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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세종말론의 노림수? “빚내 집 못사면 고가 임대 살라”
부동산 가계부채 정부정책 2016-03-14조회수: 2246
주택·월세 시장에서 월세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월세 전환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전세가 상승보다 월세전환가 상승폭이 훨씬 크다. 이런데도 대통령은 전세 종말론을 거론하며 월세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 잠실의 부동산 중개소 현황판에 월세 매물이 많이 올라와 있다. / 이석우 기자

‘세계적으로 희귀한 제도인 전세는 사라질 것이다. 월세 시대는 불가피하다.’ 근래 한국 사회를 떠도는 ‘유령’이 나타났다. 특히 아직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저소득층이나 청년층, 노년층 같은 취약계층을 옥죄는 이른바 ‘전세 종말론’은 아무렇지 않게 여겨도 될 얘기일까. 상식 수준에서 조금만 들여다 보면 내포된 위험성과 음모를 알아챌 수 있다.

시장 원리로만 보면 월세로의 전환은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로 저금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저금리 등을 고려하면 준전세 같은 ‘보증부 월세’는 과도기에 중간 기착지로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까지 앞장서서 월세 전환을 부추기는 발언을 일삼는 건 예사롭지 않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전·월세 상한선도 유명무실한 채 국회 통과를 앞뒀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집주인(임대인)이 적어도 정부·여당에 주요 고객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수 세입자는? 대충 밀어붙여도 표를 찍어주는 ‘호객’일 가능성이 높다.

전세에서 월세(준전세 등 포함)로의 전환은 저금리에 따라 세입자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전환할 때 너무 큰 폭으로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올리는 데 있다.

직장 때문에 서울 여의도 모 아파트에 사는 나모씨(38·여)의 사례가 그렇다. 나씨는 약 8억원짜리인 93㎡(28평형) 아파트에 2년 전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의 계약으로 들어갔다. 4억5000만~5억원 수준인 전세보다 집주인은 월세를 원했다. 그런데 이달 28일 전세기간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말 집주인은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했다. 보증금은 2억원으로 내리는 대신 월세를 1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나씨 부부는 결국 조건이 나은 근처 34평형의 다른 아파트 반전세를 구했다. 그런데 현재 사는 집의 월세 인상으로 다음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보증금을 받아내지 못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나씨는 “처음 들어올 때 월세 40만원을 보고 온 건데 100만원은 너무 높게 올린 것”이라며 “대출 비용을 포함해 인적·물적 피해까지 물어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시중 대출금리는 연 3% 초반인데 전세에서 월세로 바꿀 때 이자율은 약 7%가 적용되는 게 현실이다. 나씨의 경우 월세 60만원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보증금은 적어도 1억원은 낮출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집주인은 5000만원만 깎아주려고 했다. 사실상 두 배나 올려받겠다는 부당한 요구인 셈이다. 적정한 전·월세 전환 이자율 같은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 시급한데 국회는 또 시늉에 그쳤다.

더 열악한 처우의 저소득층 서민들이 입는 충격은 더 크다. 인천에 사는 40대 후반의 박모씨 부부는 1억1000만원짜리 전세에 자녀 3명과 함께 살아왔다. 보증금을 안 올려 ‘묵시적 계약 갱신’에 따라 새로운 2년 전세 기간 중 아직 1년 8개월이 남았다. 그런데 집주인이 최근 보증금은 유지한 채 월세 50만~60만원을 요구해 왔다. 박씨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6000만원까지도 올려줄 테니 온전히 전세로 남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월세를 달라”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나씨나 박씨의 집주인들이 월세 60만원을 더 받으면 사회적으로는 똑같은 연간 720만원씩이 세입자에게서 집주인에게 옮겨진 것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유 있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월 60만원의 무게가 다르다. 서민은 시켜 먹던 치킨을 줄여야 하고, 외식은 못할 수도 있다. 집주인이 치킨을 더 먹을 가능성은 작다. 한계효용의 체감 탓이다. 대신 목돈으로 해외여행에 쓸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결과는 우리가 최근 보고 있듯 내수경기 위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주거비 부담 증가는 결혼·출산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가계지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에서 왜곡이 벌어진다면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맞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5월 조사통계월보에서 “내수부진 등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민간·공공임대주택 확대, 저소득층 소득기반 확충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위계층인 소득 5분위에게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7.2%에서 2014년 8.1%로 소폭 상승했지만 최하위 소득 1분위는 18.2%에서 33.0%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국적인 전세 시스템이다. 박씨는 다달이 주거비 부담을 덜며 네 식구와 잘 버텨올 수 있었다. 서민에게 ‘전세금은 모으는 돈이고, 월세는 버리는 돈’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이 있다. 실제로 그동안 한국 사회는 스스로 마련하거나 부모가 보태준 목돈으로 전세보증금을 만든 뒤 더 큰 전세집으로 옮겨가는 행태를 보여 왔다. 그러다가 마지막 단계에는 대출을 보태든가 해서 주택을 사는 공식을 따랐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 전세 종말론을 설파한다. 박 대통령은 2월 23일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어차피 전세시대는 이제 가게 되는 것이다. 전세는 하나의 옛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1월 대국민 담화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 전문가는 “월세 경험이 없을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이 서민들에겐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아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어 “프랑스 혁명(1789년) 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아네트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처럼 들린다”고 비유했다. 지금 한국에는 빵(전세) 대신 ‘더 비싼 케이크(매매, 월세)’가 제시됐다.

경제적 근거는 그럴 듯했다. 박 대통령은 “은행 이자율이 뭐 그렇게 올라갈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한국은행이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1.5%에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총선 뒤 더 내릴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돈다.

정부의 행보는 크게 두 갈래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최경환 전 부총리 당시 경제팀은 2014년 8월 대출규제 완화로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매매 부양책을 썼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밀려난 ‘전세난민’은 솔깃했고, 다수가 자가로 갈아탔다. 이는 환자에게 일시적 고통을 덜어주는 모르핀 투여 같은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대신 급증한 가계부채라는 종양이 커졌다.

다른 한편 정부는 월세 띄우기에 나섰다. 저금리 탓에 시장은 자연스레 전세 가격을 높이거나 물량을 줄이고 월세(반전세 같은 담보 형태 포함)로 갈아탔다. 여기에 ‘뉴스테이’라는 기업형 임대주택까지 더했다. 박 대통령은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이런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간에서 ‘매매를 부추기지 말고 임대주택을 늘려달라’고 하니 나름 이에 호응한 방식이다. 그러나 값싸고 장기간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대신 민간형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그렇듯 전세는 쉽게 추억으로 남길 산물이 아닐 것 같은 지표들이 나타났다. 중위수 기준 2006년 이후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이 수치가 2006년 18.7%에서 2008년 17.5%, 2010년 19.2%, 2014년 20.3%까지 올랐다. 월급 200만원을 받는다면 5분의 1인 40만원 이상을 월세 내는 데 쓰고 있다는 뜻이다.

전·월세시장에서 월세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달에 펴낸 ‘서민·중산층의 주거비 부담 증가 실증 보고서’를 보면, 2011년 69%이던 전세 비중이 지난해 58.9%로 10.1%포인트 감소했다. 보고서는 “(통계에 안 잡히는) 무보증 월세까지 더하면 월세 증가 속도는 더 빠를 것”이라고 평했다.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인 ‘전세가율’은 2015년 전체 주택 중에서 서울이 55.2%로 전국 평균인 65.3%보다 크게 낮았다. 아파트만 봐도 서울의 전세가율은 72.8%로 전국의 84.2%보다 차이가 컸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는 앞으로 서울의 전세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많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저금리로 물량이 귀해지면서 전세가율은 더 오를 테고 이는 월세 전환을 키울 수 있다. 최 위원은 “월세가 늘었지만 아직 전세가 공식 통계로는 60%이기 때문에 월세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월세 증가현상은 매매와 전세시장 변화와 톱니바퀴로 서로 맞물린 구조에서 이해해야 한다. 전세난은 일단 주택가격 하락으로 매매를 통해 차익 실현이 어렵자 전세수요가 늘어난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위기에 따른 저금리는 월세 전환을 부추긴다. 2009년 1분기 이후 2012년 4분기 사이 매매가는 1.4%포인트 하락한 반면 전세가는 22.9%포인트 상승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정부는 마치 매매와 전세, 월세를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며 “월세 증가는 자연스런 흐름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입자의 부(월세)가 집주인에게 넘어가는 소득이전 구조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세가보다 월세 전환가 상승폭이 컸다. 수도권 전세가는 지난해 가구당 평균 1억9452만원으로 4년 동안 38.6% 상승한 데 비해, 월세 전환가는 지난해 1억6260만원으로 4년 동안 61.1% 급등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평균 월세 전환가는 서울의 경우 양천구(81.8%)·성동구(75.5%)·강남구(71.6%) 순으로 급등했고, 성남(87.2%)·과천(79%) 등도 크게 뛰었다. 전세가 급등, 품귀현상으로 촉발된 월세는 훨씬 큰 폭으로 급등했다는 뜻이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서울에서 전세를 살던 사람이 2년째인 지난해 말 같은 구에서 전세로 있으려면 평균 4701만원을 더 내야 한다고 추산했다. 반면 준전세로 갈아타는 경우는 월세 전환가로 환산해 보니 1억3354만원을 더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준전세로 전환하는 게 8653만원이나 더 비싼 것이다. 지난해 2분기 준전세는 7419만원이었으나 6개월 만에 5935만원이나 늘었다. 같은 지역에서 버티지 못하고 더 저렴한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일부 매매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 의뢰를 받아 서울연구원이 2014년 실시한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시중금리인 3.18%를 적용한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 전세 가구는 13.6%, 월세 가구는 20.7%였다. 각각 소득의 13%, 20% 이상씩을 임대료 내는 데 쓴다는 뜻이다. 게다가 시장가격 측면에서 전·월세 전환이율(연 7.7%)로 계산해 보니 RIR이 전세 가구는 32.4%, 월세 가구는 26.9%로 뛰었다. 이는 월세시대가 도래할 경우 임대료 부담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전·월세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는 월세를 올릴 때 일정한 선을 두고 그 이상으로는 높게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있다. 현실은 형식상에 그친 전·월세 전환 상한선이 있으며, 공공임대주택은 부족하고 기업형 임대주택이 늘어나는 중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7조 2항에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월세로 전환할 때 연 10% 또는 ‘한국은행 기준금리×α(알파)’ 이내로 제한해 놓았다. 시행령에 알파는 4%로 돼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75%일 때 4배인 7%가 된다. 현재 기준금리가 1.5%여서 전·월세 전환이율 상한은 6%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전국 전·월세 전환이율은 평균 7.5%였다. 연 3% 초인 은행 대출이자보다 두 배가 넘는다.

이에 국회가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만들고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전·월세 전환이율 상한선 계산법을 바꾸고,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연간 보증금 인상률도 5%로 제한된다. 그러나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환이율은 현행 ‘기준금리×α(알파)’에서 ‘기준금리+α(알파)’로 낮췄다. 알파는 시행령 개정 시점에 결정키로 하면서도 4% 수준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기준금리에 적용하면 현재 방식은 6%이지만, 개정안은 5.5%로 소폭 낮아진다. 다만 기준금리가 2.5%였던 2013년 5월에는 전환율이 10%였는데, 개정안 대로라면 6.5%로 차이가 커질 수 있어 금리 상승 시 효과가 더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강하게 요구해온 계약갱신청구권 같은 내용은 빠졌다. 전·월세 전환이율 상한선은 현행대로 ‘계약기간(2년)이 끝나기 전에 조정할 때’만 적용받는다. 기간이 지나 재계약할 때는 대상이 안 돼 절대다수 세입자에겐 있으나마나 한 법이다. 참여연대 홍정훈 간사는 “시민단체와 야당은 핵심인 계약갱신청구권을 요구했지만 여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위 위원장인 이미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다만 공공임대주택이나 뉴스테이 같은 공적인 임대시장에는 5% 이내 인상률이나 전환이율 상한선을 적용키로 한 것은 다소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의 조정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부여되지 않아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데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보다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을 계획보다 두 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의 경우 임대료는 8분위 이상 고소득층이 부담할 만한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등포 뉴스테이의 임대료는 84㎡ 기준 보증금 1억원·월세 119만원이다. 참여연대는 “이는 소득 9분위 이상만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소득 9분위는 월 663만원 소득에 가계지출 486만원으로, 여유자금(흑자)이 매달 177만원인 가구다.

또 시행 과정에 기업 특혜나 높은 임대료가 논란이 됐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뉴스테이는 중산층을 위한 주거 정책이기보다 민간임대사업자의 이윤 추구에만 초점이 맞춰진 산업정책에 훨씬 가깝다”고 비판했다. 민간임대사업자는 주택도시기금 및 택지 지원, 조세감면, 용적률·건폐율 특례, 그린벨트 해제 및 공유재산을 제공하는 공급촉진지구 지정 등 혜택을 받는다. 기존의 공공주택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공적 규제조차 받지 않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전세가 사라진다는 대통령 말은 그럴 듯하지만 월세가 고가화되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며 “교통·전기·상하수도와 달리 주택만 시장논리에 맡기지 말고 공공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값은 분양가 제한이나 양도세 등으로 조정하는데 국민의 절반이 걸린 임대료는 ‘반시장적’이라며 개입하지 않는 건 문제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조 교수는 “많은 정치인들이 ‘다 좋고 맞는 말인데 표가 안 된다’고만 하더라.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청년·노년 등 1인 가구 특히 더 취약


전·월세 가격 상승과 월세 시대로의 전환 때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충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가진 거라고는 전세 보증금이 거의 전부인 노인가구나 1인 가구 같은 취약계층도 위험에 빠질 우려가 크다.

통계청의 2015년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일단 20·30대 가구의 임대료 부담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2인 이상 가구 중 가구주의 지난해 월평균 주거·수도·광열비 지출액은 27만7468원이었다. 2014년보다 4.8% 올랐다.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가구의 월평균 주거·수도·광열비 지출액은 29만4752원으로 전 연령 중 가장 높았다. 실제주거비(월세 등 임대료)는 7만4227원으로 지난해보다 20.8% 증가했다.

또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3116원으로 전년보다 1.6% 늘었지만, 39세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3116원으로 1년 전보다 0.5% 감소했다. 최근 국토연구원의 ‘저성장시대 청년층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는 2011∼2020년 경제성장률을 3.6%로 가정할 경우 2014년 25∼29세인 청년은 10년이 지나도 56.4%만 서울에 있는 주택을 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20·30대 부담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통계에는 ‘숨은 1인치’가 더 있다.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구 소득’에는 2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미혼이나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410만 가구가 넘으며 전체의 24%나 차지한다. 국토부 201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경우가 서울의 20·30대 1인 가구의 69.9%인 23만 가구였다. 소득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경우도 22.7%로 나타났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득이 낮은 1인 가구까지 넣으면 전체 가구의 평균 소득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해 통계에서는 외면하지만 이들을 반영해야 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도권에 보증금 2000만~5000만원 정도의 ‘저가 전세’를 가진 세입자도 위험군이다. 인천에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한 ㅇ씨(여·40대 후반)는 처음엔 집을 샀다가 경제사정이 나빠져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집으로 옮겼다. 그는 “전에는 여유있게 살았는데, 한 번 무너지니까 월세를 낸 다음부터는 돈이 모아지지 않더라”고 전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전세로 돌려서 보증금 2000만원(1400만원은 사채)에 8년째 거주 중이다. 그러나 숨진 남편이 암 투병 3년 동안 매달 250만원씩 병원비를 빌려서 내느라 빚을 4500만원 정도 떠안게 됐다. 이후 수급자로 인정돼 월 107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월 100만원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주인이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은 상태여서 앞으로도 살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이 집에서 나가면 월세를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다. 비가 새고 곰팡이가 피는 집이라도 가능하면 전세금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올려주고 계속 살고 싶은데 여의치 않다.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이라도 들어갈 수 있길 바라지만 언제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보증금 5000만원 미만의 전세에 사는 가구가 2015년 기준 서울에 7087가구(전체의 4.3%), 인천에 6620가구(19.8%), 경기도에 1만9326가구(11.8%) 등 수도권에만 3만2633가구(9.1%)다. 전세 10집 가운데 거의 1집 꼴이다. 가진 재산은 전세 보증금이 거의 전부인 사람들에게 월세를 다달이 내라고 하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미래세대에게 저축의 기반인 전세 보증금이 무너지면 청년은 결혼을 기피하고, 신혼부부는 저출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의 화두인 저성장의 근원에 높은 임대료가 있다는 점을 위정자들이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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