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우리 연구소가 2014년 1월 발간한 <웹진>의 하나로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돕기 위해 공개하는 글입니다.
가계부채가 작년 말 1000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서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큰 걱정이 없는 모양새다. 정부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위험하지 않다고 보는 가장 큰 근거는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고소득층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2013년 11월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이 부채를 지는 것과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부채를 지는 것은 사회적 부담이 다르다(중략) 저소득층(하위 40% 계층)이 진 빚의 규모는 전 국가 차원에서는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2013년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 보도자료에서도 “상환여력이 있는 상위계층에 부채가 집중되어 가계 부채문제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 1>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최상위계층인 5분위(상위 20%)가 전체 부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고 4분위와 5분위를 합치면 70%가 된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인 셈이다. 그러나 소득이 많은 계층이 부채도 많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일어났던 미국 역시도 소득 최하위와 최상위의 부채 격차가 아주 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앙값 기준으로 하위 20%는 부채가 9천 달러였지만 상위 10%는 23만 5천 달러, 상위 10.1~20%는 18만 2천 5백 달러로 나타났다. 상위 20%의 중앙값을 20만 8천 달러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중앙값은 하위 20%가 1,320만 원, 상위 20%가 8,600만 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6.5배인데 비해 미국은 23.1배로 오히려 미국의 격차가 훨씬 크다. 이를 통해서 미국 역시도 부채의 대부분이 고소득층에 몰려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득층에게 부채가 몰려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안이한 상황 인식인 것이다.
<그림 2>
<그림 2>는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의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소득 1분위(하위 20%)에서 3분위까지는 미국보다 이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다가 4분위에서는 미국이 역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큰 틀에서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의 비율에서 한국과 미국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소득 5분위(최상위 20%)를 더 세분화해서 상위 20~10.1%와 상위 10%를 따로따로 분류한다. 이에 따르면 상위 20~10.1%는 소득의 19.7%, 상위 10%는 소득의 8.4%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두 소득구간의 평균인 실제 상위 20%를 계산해 본다면 한국보다 훨씬 낮은 비율인 13~14% 수준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 상위 소득계층의 부채 집중도가 더 높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의 비율은 더 낮아 한국보다 더 안정적인 상황이었는데도, 급격한 금융위기를 겪었다. 위기는 늘 ‘약한 고리’를 도화선 삼아 발생하면서 화약고인 전체 부채로 옮겨붙게 돼 있다. 미국의 경우 도화선은 저소득층에 대한 비우량 대출이었던 서브프라임론에서 부실이 시작돼 전체 금융권과 전 소득계층의 부실로 이어졌다. 부채가 과도하게 많은 경우에는 소득과 상관 없이 위기를 겪게 된다.
이는 2013년 하반기에 발간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만 꼼꼼히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 가운데 소득 5분위기 가계가 부채를 보유한 비율은 14.5%에 이르는데, 같은 소득 5분위 가운데 부채를 갖지 않은 가구수 비중 5.5%의 2.5배가 넘는다. 그리고 이들 소득 5분위 부채가구의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7%로 절반이 넘는다. 만약 소득 5분위 가운데서도 부채가구들이 금융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소득 5분위 가운데 부채가구가 가진 금융자산의 비중은 전체의 24.7%인데 비해 부채를 지지 않은 가구의 금융자산 비중이 29.6%에 이른다. 즉, 같은 소득 5분위 가운데서도 부채가구의 부채 대비 금융자산 규모는 부채를 가지지 않은 가구보다 약 3.16배나 적다. 이 이야기는 소득 최상위계층인 5분위 중에서도 부채를 지지 않은 쪽에 금융자산도 몰려 있을 뿐, 부채를 가진 가구는 금융자산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돈을 많이 버는 가구라 해도 부채가 많은 경우에는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의 이유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될 때 부채를 갚을 여유 자금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부채가 소득 5분위에 몰려 있다고 해도 내용을 뜯어보면 실제로는 부채가 있는 가구와 여유 자금을 갖고 있는 가구는 거의 뚜렷이 갈려 있는 셈이다. 결국 어떤 경제적 충격으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고소득 가구라도 금방 부실 가계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소득층이 부채도 많지만 소득도 많아 괜찮다”는 정책당국자들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알 수 있다. 아니면 알면서도 짐짓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가계를 향해 계속 “빚 내서 집 사라”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위험하기 때문에 계속 다른 가계를 재물로 삼아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면서 부채의 부실을 막으려는 무망한 시도를 거듭해보려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서 소개한 자료를 싣고 있는 금융안정보고서를 발간하는 한국은행의 수장인 김중수총재부터 자신들이 낸 보고서의 자료와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 딴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