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전경련이 돈줄을 대는 자유기업원의 모 관계자와 월세 과세 문제에 대해 KBS 라디오에서 전화 대담을 가졌다. 그런데 그 관계자가 정부의 월세 과세 방침에 대해 "집주인들을 범죄시하는 것"이란다. 수십 년 동안 사실상 탈세 행위를 방치해온 게 문제이지, 불로소득에 국가가 과세하는 게 범죄인가? 그러면 월급쟁이들은 모두 범죄인이라서 세금 내나? 정말 기득권의 망발, 어이가 없다. 그런데 그런 주장들이 온갖 언론에 난무한다.
이 같은 주장이 왜 말도 안 되는 주장인지 차분히 따져보자.
정부가 이른바 ‘2.26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에서 월세 확정일자 자료를 이용해 월세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나는 박근혜정부의 대다수 부동산 부양책을 ‘폭탄 돌리기’라면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번 대책만큼은 적극 찬성했다. 이번 대책이 서민들을 끔찍이도 생각해서 나온 건 물론 아니다. 전세 대출을 축소하는 등 전세 수요를 매매와 월세 시장 양쪽으로 ‘토끼몰이’ 하려는 의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다 보니 사실상 ‘탈세 치외법권’이던 월세시장에 과세부터 해야 했고, 이것이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 의도에 배치되는 후폭풍을 불렀다. 배경에 깔린 정부 의도야 어찌 됐든 월세 과세 강화는 바람직한 조치로 찬성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과장 보도와는 달리 최근 임대용 주택 공급 급증으로 월세가 꾸준히 떨어지고 있어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우려도 대체로 크지 않다. 그러니 임대주택을 소유한 집주인들과 부동산업계가 그토록 강력히 반발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월세 과세를 강화하기에 적절한 시기로 보았다.
하지만 역시 기득권의 힘은 강했다. 그들은 이 대책이 즉각 자신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대다수 언론들은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시장 혼란’으로 포장했다. 또 그 동안 박근혜정부의 집값 떠받치기 기조와 어긋난다며 ‘졸속 대책’이라고 난타했다.
결국 1주일 만인 3월 5일 정부는 부랴부랴 보완조치를 내놓았다. 2주택 보유자로서 주택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2년간 비과세하는 등 대폭 후퇴한 방안이었다. 말이 보완대책이지 기득권 반발에 밀려 기존 대책을 무력화하는 방안에 가깝다. 서민들은 수십 년 떠들어도 안 먹히는데, 기득권세력이 떠들면 단 일주일 만에도 개혁안이 이렇게 무력화되는 것이다.
상당수 언론들이 이리 저리 사태를 왜곡하다 보니 복잡해 보이지만, 문제는 간단하다. 근본을 생각해보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근로소득세는 일정한 소득 이상의 월급쟁이들이 모두 낸다. 그것도 정부가 원천징수를 해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그런데 불로소득에 가까운 임대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제대로 내는 집주인은 거의 없다. 집주인이 상대적으로 더 고소득자이거나 자산가인데도 그렇다. 지금까지 등록해서 세금을 내는 극히 일부의 임대사업자들의 경우에도 명목 세율과 상관없이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을 받아 세 부담이 매우 낮다. 오죽하면 실제 내는 세금의 비율인 실효세율이 2.48%로 OECD국가들 가운데 네 번째로 낮겠는가. 땀 흘려 일해서 본 근로소득 수천만원에도 20%대 이상의 세금을 물리는데, 불로소득에는 세금 한 푼 안 매기고 방치하는 현실. 이런 극단적인 불공평과 부조리를 우리는 수십 년간 용인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 충격으로 이 나라는 복지를 중심으로 재정지출 수요는 급증하는데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들게 된다. 어디에선가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법인세는 무조건 깎아주고, 주식양도차익에는 과세하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부동산 보유세도 올릴 생각이 없다. 집값 떠받치기에 목을 매며 부동산 취득세를 깎아주고 양도세 중과도 폐지했다. 그런데 임대소득세도 손을 못 대겠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세수를 확보할 것인가. 결국 애꿎은 서민들과 ‘유리알지갑’들의 세금 부담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 이래로 줄어든 세수를 메우기 위해 월급생활자들의 비과세감면 혜택은 줄었다. 연말이면 일선 세무소들이 가뜩이나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을 닦달하기 바빴다. 반려동물 등에도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등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세수 비중은 계속 늘어 소득 역진성은 더 한층 커졌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고소득층의 세 부담 증가율보다 저소득층의 세 부담 증가율이 훨씬 커졌다. OECD국가들 가운데 조세재정에 의한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가 압도적 꼴찌다.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두고 볼 것인가.
더구나 월세 과세는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을 늘려 집값 거품을 빼는 효과가 있다. 집값 거품이 빠지면 집값을 기준점으로 삼는 전세와 월세 임대료도 떨어지게 돼 있다. 대다수 서민가계에는 실보다 득이 훨씬 많은 조치다. 어차피 기득권본당인 새누리당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야권만은 “근로소득만큼 임대소득에도 과세한다”는 국회에서 큰 원칙을 관철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야권이 집권세력과 차별화하는 길이며, 이 나라 조세정의의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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