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서울시에서 열린 한 자문회의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사전에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달라고 며칠부터 얘기했지만, 보안(참, 그 놈의 보안)을 이유로 결국 회의 제목과 일시, 장소만 나온 문서를 보고 회의에 참여해야 했네요. 이런 자문회의가 늘 그렇듯 또 한 번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요한 안건이라 다녀왔습니다.
예상한대로 이미 서울시의 개발계획과 밑그림은 모두 나와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서울시 있을 때 공무원들이 2004년부터 마련한 밑그림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한 눈에도 장밋빛이었고요. 특정 지역을 특정 산업 특화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건데, 왜 그 산업이 들어와야 하는지, 그 산업이 들어오는 것이 서울시민을 위한 최적의 선택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실제로는 준비를 할 수 없었던 상태로) 간 제가 즉석에서 봐도 너무 낙관적으로 포장돼 허점 투성이였습니다. 물론 맥킨지 컨설팅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컨설팅이 발주자의 의도에 맞춰 정해진 정답을 도출하게 된다는 건 너무 뻔한 것이고요.
대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 때처럼 "서울의 미래 먹거리" "경쟁력 강화" 등의 표현들로 포장돼 있었습니다. 그런 계획들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특정 산업에만 도움될 뿐 정작 서민경제에도 도움되지 않습니다. 같은 장밋빛 계획아래 시작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홍콩, 싱가폴을 모델로 해서 추진된 국제금융센터를 건립한 지금 한국이 금융강국이 되고 시민들이 행복해졌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데 시민의 의사를 묻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전문가 의견 수렴조차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전문가 의견 수렴이라고 해봐야 해당 특정산업의 전문가들 의견만 주로 수렴한 상태. 그 분들이야 당연히 자신들 분야에 돈 투자할 건데, 낙관적 방향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씁쓸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정무팀이 또 나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시장을 보좌하는 정무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다만 선거 닥쳐서 이런 저런 포장을 하기 위해 화려한 그림을 찾는 것이고, 기존 공무원들과 업자들은 "이 때다" 하고 그 동안 갖고 있던 걸 들이미는 거지요.
결국 박원순 시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믿을 뿐입니다. 시장님이 야권 지도자 가운데 높은 평가와 상당히 충성도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과시형 개발공약을 늘어놓아서가 아닙니다. 모두 동의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 시민들 의견을 잘 경청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행정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제발 말씀하신대로 마음 비우시고 시민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결정해주세요. 시민들은 그런 시장님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몽준의 30대 대형 개발 헛공약과 차별되는 면모를 보여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칫하다간 정몽준의 개발 프레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개발 프레임으로 간다면 박시장님이 정몽준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2008년 총선 때 여야 모두 뉴타운 개발 공약을 내세웠지만, 결국 야권이 대부분 선거에서 졌다는 걸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 필요하다면, 시민들 의견을 충분히 들어 여러 대안을 준비하고 토론과정을 거치겠다, 무엇보다 시민의 살의 질을 높이는 방향의 결정을 하겠다는 정도의 원칙만 천명하십시오. 최소 수십 년 지속될 공간 개발 계획을 선거 앞두고 성급히 발표하시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선출직 공무원 가운데 가장 만족도가 높은 시장님을 제가 진심으로 지방선거에서 지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어제 회의석상에서도 드렸던 말씀이지만, 제 발언이 제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듯 하여 드리는 말씀이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