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경제연구소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근거
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열렬한 애독자다. 그의 책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언젠가는 글래드웰 느낌의 책을 써보고 싶은 욕심도 갖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번역하기로 했다. 특히 이 책의 주제가 글래드웰의 어떤 전작보다 흥미로웠다. 약자가 늘 지는 게 아니며, 오히려 자주 강자를 이긴다니!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를 번번이 골탕 먹이는 생쥐 이야기에 익숙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화영화가 아닌가. 글래드웰은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수천 년 전부터.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책 중에서 아주 특별하다. 적어도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러하리라 믿는다. 한국 사례를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지금 한국 사회를 염두에 두고 쓴 책처럼 느껴질 정도로 절절히 와닿는다. 이 책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무심코 하는 선택, 또는 당연한 듯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파리 살롱이라는 기존 질서를 뛰쳐나온 인상파가 세계 미술사를 어떻게 바꿀 수 있었는지, 왜 하버드 같은 최고 사립대에 가는 것이 늘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닭머리가 될지언정 소꼬리가 되지 말라’는 속담이 그런 측면을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오랜 진실의 일면은 깡그리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기를 쓰고 아이들을 서울 강남 학군으로 옮기려 애를 쓴다. 그 같은 선택은 아이가 강남 학군에 가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강남학군의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서 그런 기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원래 명문대를 갈 만한 아이들이 강남 학군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다. 더구나 교육전문가 이범선생님이 주장하듯이 여타 지역에서 공부를 더 잘할 아이들이 강남 학군으로 옮겨 등수가 떨어지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역효과가 난 경우도 적지 않다.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한계 수확’ 또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넘어서는 뒤집힌 U자형 곡선과 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해 해석한 사례들도 흥미롭다. 개인이든 사회든 너무 부유하고 너무 강하고 너무 좋은 것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자원을 투입하면 처음에는 효용이나 생산성이 늘어나지만, 이것이 정체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지점을 넘어 과도한 자원이 투입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예를 들어 학급 규모가 일정한 수준까지 작아지는 건 좋지만, 너무 작아지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급우들의 수가 적어져 학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한국의 과도한 토건 남발이나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개발 시대에는 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토건사업, 하지만 이미 전국에 유령공항이 넘쳐나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가 곳곳에 생겨났을 정도로 과포화 상태다. 그 극단적 사례가 경제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전국 곳곳에 ‘녹조 라떼’를 만든 4대강 사업이 아닐까. 단순히 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해버린 셈이다. 한국의 고도 성장기를 이끌어온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 이제 도를 넘어선 상태다. 오히려 한국의 중견기업, 중소기업, 골목상권을 무너뜨려 서민들이 먹고살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훨씬 커지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의 궤도 수정이 필요한 시점임을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출판계와 방송계에서는 ‘힐링’ 코드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 같은 힐링은 개인적 차원의 치유나 멘토링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개인들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과 그에 대한 개선책이 생략된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정서적 접근이 강했다. 이 책은 힐링을 주제로 하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약자가 강자를 능가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전략적 방법론을 생생한 현실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실의에 잠겨 있는 많은 약자들-회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아니면 정치적으로든-이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으며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한편으로 이 책은 강자의 위치에 있다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절대 우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글래드웰은 강자가 갖는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라고 주문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성범죄자의 처벌 수위를 높인다거나 학교폭력을 처벌 위주로 접근하는 강압적 방식이 1950년대 미국에서 나온 ‘반란과 권위’의 세계관에 빠진 결과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강압적 훈육과 처벌보다 사랑과 관심일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학교 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이 몇 년 만에 ‘문제아들의 학교’에서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범 사례로 변화시킨 경기도 용인 흥덕고 이야기가 우연이 아님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코레일 파업에 대한 강압 일변도의 정부 대응 또한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힘에 관한 책이다. 그 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오도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약한 자라고 해서 결코 약하지 않으며, 강한 자라고 해서 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약한 자는 약자로서의 강점을 활용하는 효과적 전략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강한 자는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이 같은 글래드웰의 메시지는 매우 강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에 느꼈던 진한 감동과 여운을 잊을 수 없다. 정말로 대단한 책이요, 작가다.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내가 맡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번역 과정에서 느낀 깨달음과 희망, 감동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