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언 블로그

선대인 소장이 개인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92조 R&D투자, 무작정 늘리기만 하면 좋을까?

2013-07-09

박근혜정부가 향후 5년간 과학기술 R&D에 92조 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 신규 일자리 64만개를 창출하고 과학기술이 국내 경제성장에 미친 기여율을 35.4%에서 40%로 상승시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정부가 그 같은 목표를 제시하고 노력하는 것이야 좋지만, 그것이 정말 한국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정말 적정한 투자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한국의 R&D 투자는 매우 문제점이 많은 투자 분야다. 이제 많은 이들이 토건 분야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상당 부분 낭비성 투자가 되고 있다는 걸 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R&D 투자의 상당 부분이 재벌 중심의 투자이며, 매우 효율성이 낮은 낭비성 투자라고 하면 선뜻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R&D 투자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문제가 많으며 이 같은 구조를 고치지 않은 채 무작정 R&D투자를 대폭 증액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2012년 예산안에서R&D 예산이 차지하는 규모는 약 16조원이다. 한국의 전체 R&D 투자는 2010년 기준 GDP 대비 3.36%로 집계된 OECD 국가 32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높으며, 정부R&D예산 비중도 GDP 대비 1.03%로 OECD국가들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OECD 평균은 0.71% 수준이다. 한국은 대체로 일반 가계에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복지, 교육, 문화 등에 대해서는 OECD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의 예산 배정을 하는 반면 건설, R&D 등 경제사업에 매우 과도한 투자를 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R&D 예산의 대부분은 ‘신성장 동력산업 개발’ 등 거창한 포장을 두르고 있다. 더구나 ‘R&D 투자를 늘려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재벌계 연구소나 주류 매체들의 되풀이되는 주장 때문에 R&D 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매우 생산적인 예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적정한 수준의 투자를 하는 것은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현실에서 과도한 R&D예산 투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R&D 예산 투자를 통해 개발된 기술의 수혜자는 거의 대부분 최종적으로는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이 된다.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R&D 예산 비중은 중소기업청 예산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낮다. 사실 R&D예산이 처음 편성될 때부터 삼성전자 등 재벌대기업들이 제안한 내용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대기업 위주의 R&D 투자 효율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R&D 예산 투자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정부 R&D 투자의 총요소생산성 기여도는 대기업 0.14%, 중소기업 0.92%로 중소기업 쪽이 오히려 6.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더구나 중소기업이 일자리의 88%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중소기업에 대한 R&D 투자가 그에 비례해 많아야 정상이나 현실은 정반대로 돼 있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과도한 R&D 재정 투자는 정부가 지원해주는 만큼 대기업들이 원래 자신들 돈으로 해야 할 투자를 줄이는 구축효과가 발생한다. 더구나 대기업에 대한 투자는 대기업의 자체 R&D 투자를 위축시킨다.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상당수 대기업들은 어차피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어서 자체 R&D 투자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가 R&D 예산을 대기업에 지원해주면 대기업은 굳이 자신들 돈으로 투자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지원해주는 만큼 대기업들은 원래 자신들 돈으로 해야 할 투자를 줄이게 된다.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생겨나는 것이다. 반면 같은 돈을 자체 투자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투자하면 이 같은 효과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가상의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보자. 한국에 크게 대기업 A와 중소기업 B가 각각 하나씩만 있다고 하자. 정부가 R&D예산 15조원 가운데 A에 13조원을 투자하고 B에 2조원을 쓴다고 하자.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는 A는 어차피 25조원을 R&D 예산에 써야 하고, 쓸 수 있는 자금여력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13조원만큼 지원해주므로 자체적으로는 12조원만 쓰면 된다. 반면 B는 13조원의 R&D투자가 필요한데도 실제로는 3조원 정도밖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이 경우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 2조원을 받고 자체 자금 3조원을 투자하게 된다. 그러면 국가 전체의 R&D 투자는 30조원(대기업 25조 + 중소기업 5조원)에 그친다.


반면 정부가 이번에는 A에 5조원만 쓰고, B에 10조원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대기업 A는 정부 지원 5조원에 더해 20조원의 투자를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A에 대해 이뤄지는 R&D 투자는 25조원으로 변함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B에서는 이제 필요한 13조원(B 자체 투자 3조원 + 정부지원 10조원)의 R&D 투자가 모두 일어나게 된다. 이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는 38조원의 투자가 발생하게 된다. 정부가 같은 돈을 쓰고서도 나라 전체로 보면 8조원만큼의 추가 투자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구나 중소기업에 대한 R&D 투자 효율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경쟁력 제고와 경기 진작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보면 같은 R&D 투자를 하더라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벌 대기업들에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같은 구축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R&D예산은 민간기업이 선뜻 투자하지 않는 기초과학기술 과제 등에 장기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R&D투자는 재벌기업들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당장 기업들이 써먹고 싶어하는 경제성 R&D투자 비율이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지만 효율성은 매우 떨어진다.


또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R&D 투자는 과도한 반면 중소기업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는 직업훈련에 대한 재정 투자는 2010년 기준 GDP 대비 0.07%로 OECD 평균 0.1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즉, 전반적으로 한국의 R&D 투자는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과도한 수준이며, 투자 효율성도 매우 낮은 예산이다. 따라서 정부 R&D 투자를 무작정 확대하는 게 결코 능사라고 할 수 없다. 늘린다 하더라도 R&D투자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한편 재벌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에 폭넓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사실 이처럼 과도한 R&D 예산을 오히려 중소기업 중심의 직원훈련 등 인적자원개발(HRD) 예산이나 마케팅, 판로개척, 컨설팅 지원 예산으로 전환해 가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현재의 비효율적, 재벌 중심적 R&D투자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보다는 예산의 효율성 저하와 재벌 특혜, 구축효과로 인한 민간 R&D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런 면에서 이 같은 R&D 투자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개혁 없이 박근혜정부가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 R&D투자 항목을 제목만 바꿔 투자액을 늘리는 식으로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거창하게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보다는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혜 범위가 중소기업까지 널리 퍼지며, 민간 구축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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