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에서 가계소득통계를 사실상 조작해 지니계수를 실제보다 낮게 유지해온 사실이 한겨레신문 보도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어제 쓴 글 'MB는 통계로 어떻게 국민을 속였나(http://www.sdinomics.com/sdinomics/report_view.html?bbs_id=blog&cata=&idx=63&pg=1) 가 많은 이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 글을 빌어 뜨거운 호응을 보내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런데 MB정부가 대선 직후 발표한 새로운 지니계수도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지니계수 0.34에 비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발표된 0.357도 한국의 실제 불평등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잘 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매우 심각해졌다. 불평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소득격차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 소득이 101만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 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약 아홉 배가량 더 많이 늘어난 셈이다. 상위 10%의 월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지를 보여주는 배율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높아졌다. 이 배율은 1993년 6.8배를 기록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9.4배까지 치솟았다가 지금도 9배 전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의 통계 기준이 2009년 이후 달라져 연속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2009년 이후에도 격차 확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청 조사는 표본조사를 통한 것으로 ‘타워팰리스’ 거주자처럼 조사를 꺼리는 최상류층의 실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행히도 상위 1%의 소득 집중도 윤곽이 경제학자 출신인 민주당 홍종학 의원에 의해 드러난 바 있다. 홍의원이 그동안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개되지 않던 국세청의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상위 1%의 평균 소득(3억 8120만원)은 중위 소득(2510만원)의 15.1배였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 적어 면세 대상이 되는 과세 미달자를 뺀 비교인데, 과세미달자 560만 명을 포함한 경우 중위소득(1688만원)의 22.6배나 됐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의 소득격차도 계속 늘어났는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상위 10%의 평균 소득 증가액은 710만원으로 전체 평균 소득증가액 226만원의 3.1배, 하위 10% 평균 소득증가액 40만원의 17.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통합소득 상위 10% 이상 소득계층의 비중은 2007년 32.9%에서 2011년 34.3%로 늘어났다. 이 같은 소득 집중도는 대다수의 선진국들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 상당수의 중남미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사실 국세청의 소득 자료는 각종 비과세 및 감면 소득이 빠진 액수이므로 실제 소득격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한국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중반에 이미 30여개 OECD국가들 가운데 빈곤층(전 국민 가운데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인 계층)이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또 멕시코와 스위스,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빈곤격차(poverty gap, 중위소득과 빈곤층의 평균 소득의 차이를 나타냄)가 큰 나라가 됐다. 하위 10%의 소득 대비 중위소득의 배율이 2.5배 정도로 멕시코, 미국, 터키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런데 이 같은 통계조차 한국의 불평등도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처럼 보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대로 통계청 자료는 최상위 계층의 소득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한편 평균 소득이나 중위 소득 등은 국세청 자료보다 상당히 높게 잡혀 있다. 하지만 통계청은 이 같은 표본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불평등 관련 지표를 내고 있고 그것이 OECD에도 보고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불평등 지표가 실제보다 훨씬 완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홍의원이 밝힌 국세청 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불평등도 지표인 지니계수를 구하면 2011년 기준 0.448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셈인데, 이 수치를 그대로 대입하면 OECD 34개국 가운데 2000년대 후반 기준 가장 지니계수가 높은 멕시코(0.4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진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OECD 통계로는 0.38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는데, 스티글리츠가 책에서 인용한 수치는 0.48로 멕시코와 맞먹는 수준이다. 어떤 경우든 분명한 것은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사회가 멕시코나 남미국가들처럼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개탄했는데, 한국 또한 미국의 궤적을 뒤쫓아 빠른 속도로 불평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현실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최근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시켜 왔다. 조세구조를 예로 들어보자. 소득세의 경우 한국은 평균임금의 167%를 받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OECD 국가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또 한국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당히 낮은 수준에 속한다. 오히려 스티글리츠가 불만을 터뜨리는 미국의 법인세율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일본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대부분 국가들이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명목세율뿐만 아니라 실효세율은 더 낮아 삼성전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누리기 힘든 낮은 실효세율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 등 재벌기업들은 언론을 통해 세금 부담이 높아 금방이라도 한국을 떠날 것처럼 협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재분배해서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효과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예를 들어, 가계 가처분소득 가운데 과세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OECD 국가 간에 비교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이 비율이 8.0%로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한국 바로 다음인 아일랜드도 19.4%로 한국보다 2.4배 이상 높다. OECD 평균은 28.3%로 한국의 3.5배 가량에 이른다. 미국도 OECD 평균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약 26%로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한편 이 같은 과세로 인해 불평등이 감소하는 효과가 스위스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가계 가처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비율이 가장 낮고 누진세 적용 등이 미약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고소득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 적용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소득 부유층과 재벌 대기업 등의 세금 부담이 적은데도 이명박정부는 미국 부시행정부를 따라 대규모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세계적으로 3위 수준의 대규모 감세였다. 그 같은 감세정책의 결과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경제성장에도 기여하지 못했고, 불평등을 키웠으며 정부채무만 잔뜩 늘려놓았을 뿐이다. 이명박정부 들어 국세 수입의 3대 축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가운데 직접세인 소득세(-3.6%)와 법인세(5.2%)는 줄거나 거의 늘지 않았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인 종합부동산세(-57.4%)와 개별소비세(-1.8%)도 줄었다. 반면 간접세여서 상대적으로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부가가치세(20.0%), 유류세(21.9%), 주세(27.2%)는 대폭 늘었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왕창 깎아주고 중산층과 서민들 세금을 대폭 올려 소득 역진성을 키워버린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 때 상위 20%의 세금 증가율은 63.7%였으나 이명박정부에서는 13.2%로 감소했다. 반면, 하위 20~40% 계층의 세금 증가율은 3.8%에서 65.7%로 크게 늘었다. 가뜩이나 심각한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시켜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재벌개혁과 복지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상응하는 흐름인 셈이다. 물론 대선 1번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국정목표에서 빼버린 박근혜정부에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를 완전히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정년 60세 연장안이 통과되고, 재벌 경제력 집중 견제와 공정거래 질서 강화를 위한 몇 가지 입법안이 통과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저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강조하듯이 지금의 불평등이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정치적, 정책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사회정치적 기득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날이다. 하지만 낙관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노력할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해진다’. 함께 꿈꾸어 보자. 재벌 등 경제기득권에 주던 특혜를 없애고 이를 서민의 혜택으로 전환한 미래를.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서민들의 부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이전해온 거대한 부의 이전 시스템을 바꾼 미래를. 재벌대기업 지원과 토건부양책으로 탕진하던 세금을 아껴 보육과 교육, 복지, 문화, 생활체육 등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데 쓰는 나라 살림살이를. 그리고 수출대기업이나 건설업계,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업체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 주택수요자, 금융소비자 등에 유리한 정책기조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우리가 함께 꿈꾸는 한 그 같은 세상은 결코 꿈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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