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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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홈페이지 캡쳐 |
[초이스경제 김슬기 기자] 지난 4월 은행과 제 2금융권 가계대출이 10조원 넘게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기준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면서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77조8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8조원 늘었으며 기타대출도 2조1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부채 1100조 시대를 맞은 요즘 그 증가속도가 심상찮다. 지난 1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은 7.3%로 가계소득증가율인 2.6%의 세배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금리인하와 부동산 규제완화, 빚에 대한 저항심리가 줄어들면서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MBC "PD수첩"이 우리나라 가계부채 실태를 집중 점검해 눈길을 끌었다.
10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 9일 "PD수첩"에서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위해 취직 전 부터 빚을 내야 하는 대학생부터 소득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중장년층까지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전 세대의 사연을 전했다.
대학교 4학년 김지현씨가 등록금 마련을 위해 받은 학자금 대출은 3500만원이다. 김지현씨는 “한학기 등록금이 400만원이다. 졸업 후 5년 간은 빚을 갚는 데 돈을 다 써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한편 졸업반 송용규씨는 생활비 해결을 위해 600만원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송용규씨는 "막노동부터 군고구마 장사, 학교 근로 장학생, 포장, 택배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그런데도 대출을 받아 한 달 생활비로 쓰는 50만원은 월세를 내고나면 항상 부족하다. 거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말했다.
2014년 기준 65.7%의 부채가구는 평균 9117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빚이 가장 크게 늘어난 연령층은 20대로 그 증가율이 전년대비 11.2% 수준이다. 전국 대학생 및 대학원생은 1인당 평균 27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생활비 대출액 역시 2011년 3231억원에서 지난해 6804억원으로 약 2.1배 늘어났다.
송용규씨처럼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대학생의 경우 취업준비에도 큰 지장을 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재학시절 학자금이나 생활비 대출 경험이 있는 학생 중 82.4%가 "빚이 취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한편 24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28살 김옷니엘씨는 "대체 복무하는 동안 월급의 반을 저축해 1500만원을 갚았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파서 병원 가는 돈도 아꼈다. 여행도 한번 못갔다. 남은 빚 900만원을 청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학자금대출을 다 갚고 나면 보험, 연금도 들고 싶고 전세자금도 마련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대학 졸업 후 학자금을 상환하고 있는 청년들의 수는 많지 않다. 2010년 졸업생 중 학자금 대출 상환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이 40%에 이른다. 졸업한 지 4년이 됐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최저생계비인 월소득 155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30대의 경우 20대와는 또 다른 대출요인이 생긴다. 결혼이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33세 진태규씨는 "결혼 당시 여자 친구가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도 5000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전세금은 매번 올려줘야 한다. "대출받아서 집을 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서울 중심가 아파트 30평 정도면 5억원을 줘야하는데 정년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에서 갚아나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주택구매 의욕이 낮았던 30대가 전세값 상승과 금리인하, LTV·DTI규제 완화 등으로 매매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4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증가율의 경우 39세 이하가 23.6% 증가해 40대(11.6%), 50대(7.8%), 60대(7.75%)를 크게 앞질렀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은행권 가계부채 증가액 44조1000억원 중 주택담보대출이 약 97%를 차지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기존 30대는 집값이 오를 것 같지도 않고 아버지 세대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던 것을 목격하면서 집 소유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30대의 경우 현재 직장이 정규직이 아닐 수도 있고 일자리나 소득이 일정치 않을 수 있다. 결국 집 구매를 위해선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은 "수도권에서 부동산 활황을 맞았던 2006년 하반기와 비교했을 때 주택거래건당 주택담보대출액이 2배 가량 높아졌다. 향후 집값이 하락한다고 봤을 때 부채부담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30대들은 "결국 빚을 안 지려면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 부모님세대에서는 빚 갚는 재미로 산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입을 모은다.
빚을 권유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부채양산에 큰 역할을 했다. 50대 남성은 "급전이 필요해서 광고를 보고 돈을 빌렸다. 돈 빌릴 때 필요한 서류는 신분증하나였고 주소와 계좌번호만 알려주니 바로 입금이 됐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딸도 신용불량자가 됐고 이후 직장구하기가 더 힘들어지면서 10년째 신용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블 채널에선 대부업체 광고가 하루 1000회 넘게 방송되고 수입이 없는 수입이 없어도 돈을 빌려준다는 인터넷 글은 쉽게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사람도 언제든지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스템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영업자가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사업자금과 생활비로 충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시장 상인들은 새로운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면서 기존상인과의 재계약을 거부하자 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보증금만 준다는데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권리금을 내야한다. 가게에 설치된 시설을 다시 꾸리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 여기서 버는 돈으로 한 달에 절반은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는데 수입이 없으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70대 상인은 "여기에서 나가면 이 나이에 폐지를 줍는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그런가하면 권리금 2억3000만원과 방화로 불에 타버린 가게를 꾸리기 위해 3억원의 빚을 낸 정태환씨는 "12~13년 전에도 큰 돈을 대출을 받았었는데 그 때는 겁이 안났다. 다행히 장사가 잘돼서 상환을 했는데 이번에 대출 받을 때는 무섭더라. 한번 빚지면 이전보다 갚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2013년 기준 장기추심대상자는 350만명에 이르고 금융사 3곳 이상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328만명에 이른다.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는 164%로 미국(114%), 스페인(131.9%) 보다 높은 수준이며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이 40% 이상인 가구는 2012년 146만 가구에서 2014년 234만 가구로 크게 뛰었다.
이처럼 악화되는 가계부채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반대의견도 제기된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 총량이 늘지 못하도록, 또는 늘더라도 경제성장률 범위 내에서 움직이도록 통제해야 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부채를 늘려놓으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금리인하로 집값, 주가가 오르고 환율에 우호적인 영향을 주면 단기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것이 민간소비와 투자를 자극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내수와 수출경기가 부진하기 때문에 답답하니 금리를 내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지금은 재정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이 변동금리 조건인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에 미칠 타격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전해졌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인호 교수는 "미국이 양적완화정책에서 출구 전략으로 금리를 올리게 되면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1100조의 이자가 그만큼 오르게 된다. 3~5%의 금리만 올려도 30~50조의 금리비용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김동원 교수는 "현재 가계부채는 감당가능한 수준이지만 관심을 둬야할 건 미래다. 분명 미래 상태는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다"고 경고했다.
"PD수첩" 제작진은 "가계부채 문제는 소비부진, 부동산폭락 위험 등 궁극적으로 금융시장 전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면서 "고용창출, 임금인상 등을 통한 소득증가, 취약계층 사회안전망 확대 등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