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 엘리엇 사태에 대해 최근 뉴라이트 계열의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토론회에 참여한 학자들이 마치 이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을 찬성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것처럼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헤지펀드인 엘리엇도 당연히 투자이익 극대화라는 속내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편법을 동원한 삼성 3세 승계 행태를 눈감아주면서 “국내 우량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정의”라고 부르짖는 건 기만적인 프레임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룹 지배권을 몰아주기 위해 삼성물산의 가치를 현저히 낮게 평가한 합병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우량기업을 보호하는 것일까? 삼성물산이라는 우량기업을 보호하고 싶다면 오히려 삼성그룹 차원의 작전(?)을 통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현저히 낮게 평가한 합병 결의안을 무산시키는 것이 더 맞는 방법 아닐까 싶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의도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수주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합병 추진 전 삼성물산 주가는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지금 벌어지는 사안은 많은 개인투자자를 포함한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해 삼성물산이라는 기업도 아닌, 이 부회장의 사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토론회 참여 학자들은 ‘국익’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지키게 되는 것은 이 부회장의 사익일 뿐이다.
사실 나는 민간기업의 합병 문제를 국익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는 것부터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번 사안에서 국익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이익이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10% 넘는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인데,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데 지금 합병 비율은 자산가치가 세 배인 삼성물산의 가치를 오히려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당연히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가치, 즉 국민의 이익을 매우 저평가하고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 굳이 ‘국익 프레임’으로 보자면 지금 합병 추진방식은 국민의 이익, 즉 국익을 희생해 이 부회장의 사익을 추구하는 합병안일 뿐이다.
물론 나라고 외국계 투자자본인 엘리엇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양쪽이 다 문제가 있을 때 양쪽의 문제를 다 인식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엘리엇은 최악의 투기꾼’이라고 몰아세우며 마치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부정한 행태가 국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황당하다. 애초에 빌미를 제공한 게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잘못된 3세 승계 행태 아닌가.
지금 서민경제가 어려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삼성을 정점으로 하는 재벌 독식 구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골목상권이 붕괴되고, 산업생태계가 질식하면서 새로운 성장 기업도,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고 있다.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3세, 4세가 자신들의 지분을 훨씬 뛰어넘는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재벌의 사업영역을 확대할수록 서민경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독일, 일본 모두 우리의 재벌에 해당하는 트러스트, 콘체른, 자이바쯔(한국 재벌의 어원)를 해체하고 소득 격차와 고속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대압착기(Great Compression)와 라인강의 기적, 일본 경제의 기적을 일궈냈다. 지금이라도 재벌을 제대로 개혁해서 산업생태계를 살리고, 서민경제를 숨 쉬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의 이익, 즉 국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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