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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일본 따라가는 ‘최경환노믹스’

#부동산#정부정책 2014-12-08

ㆍ부양책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만 핵심은 주택대출규제 풀어 집값 띄우기…
ㆍ반짝 효과 있을지 몰라도 장기침체 초래할 가능성 매우 높아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침체로 빠져들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같은 우려가 커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른바 ‘최경환노믹스’의 명분도 일본식 장기침체를 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좋아지는 착시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최경환노믹스가 한국 경제를 더욱 더 일본식 장기침체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실제로 김종인 전 의원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말로는‘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딱 일본처럼 하고 있다”고 같은 진단을 한 바 있다.

왜 그럴까. 일본식 장기침체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들은 부동산 거품과 부채 문제, 그리고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력의 저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부동산 거품 문제부터 살펴보자. 한국과 일본의 부동산 거품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 속에서 투자처를 찾아서 거액의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거품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일본은 주로 상업용 부동산이 부동산 거품의 중핵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를 대상으로 한 소매금융으로 전환한 금융업체들의 무분별한 ‘대출 펌프질’이 배경이 되기는 했으나 일반가계 중심의 주택 투기가 부동산 거품의 핵심이었던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가계부문의 경제적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한국의 경우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경우 가계부문의 타격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토건족만 배불린 일본 부양책과 닮은꼴
이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급속한 고령화와 베이비 부머들(일본의 경우 ‘단카이세대’라고 불림)의 대거 은퇴 및 주택 구매층 인구의 감소를 눈앞에 두고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는 상황적 공통점은 매우 유사하다. 과거 일본이 겪었던 것보다 더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일본식 장기 침체’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배경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최경환노믹스가 역설적으로 일본식 장기 침체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게 될까. 과거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대응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본 부동산시장이 1991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하자 기업 도산과 개인 파산이 잇따르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가 빠르게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부양책을 내세우게 된다. 1992~1995년 동안 무려 66조9000억 엔에 달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경기부양 대책 외에 2조 엔씩 세 차례 보완대책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재정투입은 73조 엔에 이른다. 이는 1994년 일본 정부의 일반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였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경기부양 대책에 투입했지만 결국에는 버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왜 일본의 부양책은 효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당시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토건업자들과 강력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경기부양책의 속을 들여다보면 지나친 거품을 빼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보다는 건설업계를 위한 각종 건설 및 토건사업들로 들어차 있었다.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거품을 조장한 것이었다. 이런 부양책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닮아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책 등을 위주로 부실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것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들의 상당수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정부의 ‘재정호흡기’를 통해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까지 먹여 살리다 보니 옥석가리기가 지연됐다. 결과적으로 건설업계 전체의 부실이 늘어나고, 일본 금융업체들의 부실채권 정리도 지연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한 경기 불안이 지속되면서 일본 경제 전체의 장기 침체를 초래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일본 정부가 이런 식의 잘못된 부양책을 남발한 결과,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부담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갈수록 경기부양책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각종 금융 및 세제 완화를 통해 일본의 가계들이 저금리 대출을 빌려 건설업체들의 분양물량을 사도록 유도했다. 이른바 가계부채를 동원한 부양책을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 건설업체들의 주택 분양물량은 계속 늘어났다. 늘어난 주택 분양물량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일본 가계의 주택대출액도 크게 늘었다. 1991년 117조 엔 수준에서 2000년 183조 엔 수준까지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처럼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계속 빚을 내 집을 사게 한 결과 일본의 내수시장에 돈이 돌지 않았고, 결국 경제 전반 및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가 지속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한편 정부 부양책과 일본 가계부채 증가에 의존한 주택 분양 등에 기대 연명하던 건설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이 위기는 부실채권 급증과 금융기관의 위기로 번졌다. 거품 붕괴 국면에서 부실해진 건설업계에 대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못하면서 1990년대 후반에는 결국 도산기업 수와 도산기업의 부채총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당장 산업 구조조정ㆍ부채 줄이기 나서야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일본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한국 정부의 무리한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 때문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좀비 건설업체’를 양산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세수부족으로 재정을 동원한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정부는 각종 세제혜택과 공유형 모기지 대출 도입 등을 통해 일반가계들이 건설업체들의 분양물량을 떠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여전히 부동산시장 침체기가 명백한 2014년에 2007년을 제외하고 2000년대 이후 사상 최대의 분양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같은 분양 물량이 2~3년 후 입주물량으로 돌아올 경우 부동산시장 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1990년대 중반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된 일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한국 경제 현실과 최경환노믹스의 상황적 맥락은 1990년대의 일본과 더 닮아 있다. 사실 최경환노믹스의 핵심은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주택대출 규제완화를 통한 집값 띄우기일 뿐이다. 하지만, 빚을 더 낼 수 있는 수요가 많이 남아 있지도 않다. 고작 3~4개월가량의 ‘반짝 효과’를 낼 뿐, 효과가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 이미 집값이 다시 가라앉고 있는 징후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산업 구조조정과 부채 다이어트를 핵심으로 하는 정책기조로 전환해야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침체를 피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그리고 가계는 정부의 ‘괜찮다’는 말만 무작정 믿지 말고 적극적인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나서야 한다. 더구나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생겨나는 충격파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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