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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20) 연재를 마치며

#정부정책#산업/기업 2013-09-01

ㆍ세금 혁명… 희망의 경제는 있다

우석훈 박사가 지난주에 ‘불황, 앞으로 10년’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기에 조그만 희망의 근거라도 보여주는 건 내 몫이 돼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그 희망의 근거도 결국 남루한 현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간·계층간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부동산 거품도 해소하지 못했는데, 공공부채와 가계부채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5~10년 지나면 저출산·고령화가 본격적으로 닥친다. 이런 중첩된 위기를 해소하고 새 세상을 만드는 가장 종합적인 접근은 결국 나라 살림살이를 바꾸는 것이다. 이른바 세금혁명이다. 

 
반값 등록금을 시행 중인 서울시립대. 한국은 사립대 비중이 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국공립대 등록금을 현재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뜨리고, 국공립대 비중과 함께 교육 수준을 높이면 학벌, 지역 차별 구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된 수퍼 리치 부동산 과표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우선 조세 부문부터 보자. 지금 한국은 생산경제 영역에 비해 주식이나 부동산과 관련된 자산경제 규모가 이미 7배 이상으로 커졌지만, 자산 영역에 매기는 세금 비중이 너무 빈약하다. 예를 들어 중앙과 지방정부의 주요 재원인 부동산 보유세(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합계)만 해도 미국은 1%가 넘어가지만 한국의 실효세율은 과표 기준으로도 0.3%가 채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재산세 과표의 기준이 되는 공시주택가격부터 매우 낮게 잡혀 있다. 특히 상위 1% 부자들이 가진 부동산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집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의 개별주택가격은 130억원이다. 서민들 입장에서야 입이 떡 벌어질 액수이지만 실제보다 매우 낮게 책정된 것이다. 경실련은 이 집의 가격을 주변 거래 시세 등을 조사해 2011년 기준으로만 최소 310억원으로 추정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실제 시세의 약 42%가량만 공시주택가격으로 잡힌다는 뜻이다. 

이 회장 자택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재벌가를 비롯한 고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의 약 30~50% 수준에 불과하다.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빌딩 등 상업용 건물의 공시가격도 대략 시세의 30~50% 수준만 반영된다. 이처럼 각 주택당 개별 공시주택가격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표준주택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도 아직 59.2%에 그친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과소하게 잡힌 공시주택가격의 60%만 과표로 잡아 재산세를 매긴다. 앞에서 과표 기준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0.3%가 안 된다고 말했지만, 시세 대비로는 실효세율이 0.1%도 안 된다는 게 나의 추정이다. 

만약 공시 주택가격의 시세 반영률과 과표 반영률을 높이고, 실효세율을 0.5% 수준까지만 높여도 20조~30조원 가까이 세수를 더 거둘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주택 양도소득세에서도 ‘다운계약서’ ‘업계약서’ 등의 관행이 횡행해 주택 경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수조원가량의 세수 손실이 일어나고 있다. 1가구 1주택자를 기본적으로 비과세로 한 탓에 이를 ‘탈세 구멍’으로 해 부동산 거래의 90% 이상이 과세되지 않거나 매우 과소하게 과세되고 있다. 월세 비중이 급증하고 있지만, 월세소득을 제대로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집주인들은 20~30%도 안 된다. 연봉 몇 천만원만 돼도 1년에 몇 백만원씩 근로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직간접 세금을 내는데, 당장 주식으로 수천만원을 벌고 부동산으로 양도차액 6억, 7억원씩 남겨도 세금 한 푼 안 낼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부동산 부양책이나 전·월세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을 양성화한다며 세금을 더 깎아주지 못해 난리다.

■ 법인세율·근로소득세율 과연 공평한가

법인세는 어떤가. 한국의 명목 법인세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준조세회피처 국가나 서구자본 유치가 급했던 과거 동유럽 국가 등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재벌대기업들의 실효 법인세율은 법인소득 300억~5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보다 더 낮다. 더구나 2000년에 비해 2011년 법인가처분소득은 533% 늘었는데, 법인세 부담은 겨우 151%만 늘렸다. 반면 같은 시기 개인 가처분소득은 86% 늘었는데, 소득세는 142%로 소득에 비해 대폭 늘린 것과 비교하면 법인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불로소득에 가까운 막대한 자본차익이나 급증한 법인소득에 대한 과세는 내버려두고 근로소득세만 더 걷겠다는 게 얼마 전 세법개정안의 내용이었다. 근로소득 계층간 세부담 형평성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이게 정말 공평한 것인가. 더 큰 차원의 근본적인 조세 불공평은 못 본 척하고 봉급생활자에게만 현미경을 들이댔으니 말이다. 이른바 버핏세가 뭔가. 슈퍼 리치들의 배당 및 이자 소득과 같은 자본 차익에 대한 세율이 버핏의 비서와 같은 일반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소득세율의 절반도 안 되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 아닌가. 그런 버핏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밖에 재벌의 비자금과 회계조작을 동원한 탈세와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는 또 어떤가. 간이과세제를 배경으로 자영업자들, 특히 비양심적인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도 횡행한다. 또한 매년 약 30조원 규모에 이르는 비과세 감면 혜택의 대부분은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돌아가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조세형평성을 근본에서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세재정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 매년 최소 수십조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일반가계와 서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쓸 수 있다. 몇 가지 큰 줄기만 정리해보자. 

우선, 앞서 설명한 대로 현재 시세의 30~50% 수준에 불과한 단독주택과 대기업 보유 부동산의 과표를 현실화하고, 소득조사청을 설립해 법에 명시된 양도소득세와 임대소득세를 제대로 거두면 약 20조원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거둔 세금을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주거 취약층을 위한 주택바우처 재원으로 사용해 ‘전 국민 주거안정망’ 구축에 사용할 수 있다.

또 OECD 평균 두 배에 이르는 토건사업예산을 크게 줄여야 한다. 2012년 현재 정부가 분류한 SOC 사업예산뿐만 아니라 각 부처에 흩어져있는 토건시설형 사업을 모두 집계하면 약 40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교통시설특별회계와 광역시설특별회계 등 토건사업의 자금줄인 특별회계를 폐지해 일반회계로 통합하는 한편 건설부패와 예산낭비의 온상이 되고 있는 턴키담합 등 입찰비리를 근절해 토건시설 예산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연간 약 12조원으로 보육 확대 및 아동수당, 고교 무상교육과 지방 거점 국공립대 지원 등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다.

재벌대기업에 집중된 법인세 비과세 감면 혜택을 대폭 줄이고 해고세를 신설하면 7조원가량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실업보험 확충과 자영업의 고용보조금 등으로 사용해 실업충격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릴 수 있다. 혜택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돌아가지만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는 R&D 예산 16조원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 4조9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들 예산을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직원교육 및 판로·사업컨설팅 지원과 함께 신진학자와 대학생들의 연구 및 학자금 지원에 쓸 수 있다.

중소기업 업종을 침범하는 대기업에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1.5배 이상 중과하고 재벌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및 이로 발생한 대주주의 배당소득에 중과세하면 한 해 1조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재원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 육성 펀드를 조성하고 자영업 R&D센터를 건립, 운영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제안들 가운데 일부는 일반 납세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낭비성 지출을 줄이거나 재벌대기업 등 1%가 누리던 특혜를 일반 납세자의 혜택으로 전환해주는 것이다. 즉, 나라 살림살이를 잘만 운영하면 국민들의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이 얼마든지 복지와 문화, 교육 예산을 늘리고 삶의 질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교육예산을 대폭 늘리는 걸 상상해 보자. 박근혜 정부가 많이 오염시켜 놓기는 했지만 창조경제는 콘크리트가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입국’을 떠들어왔지만, 현실은 연간 1000만원에 육박하는 사립대 등록금 부담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졸업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된 것은 국내의 국공립대학 인프라가 취약한 가운데 주요 사립대들을 중심으로 학벌 서열구조에 안주해 등록금 장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립대 비중이 78%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거의 대다수 OECD 국가들은 국공립대학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구조인데 비해 한국은 정반대다. 사립대 중심의 대학 구조를 가진 것으로 오해되는 미국도 국공립대 비중이 67%에 이른다. 이처럼 취약한 국공립대 인프라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재정지출 비중이 두 번째로 낮은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 국공립대 등록금 지원 등 세금은 삶을 변화시켜

따라서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공립대학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렇게 대폭 확충된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현재보다 3분의 1 이하로 대폭 떨어뜨리거나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고 동시에 실력 있는 교수 확충 등을 통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 그렇게 하여 비용(등록금) 대비 편익(교육 서비스의 질) 측면에서 지방 국공립대가 좋아진다면 점진적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국공립대로 몰리게 되고, 사립대의 위상은 점차로 약해질 것이다. 5~10년에 걸쳐 이런 식으로 꾸준히 지원을 하면 대학 서열 구조와 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가 마구잡이로 등록금을 올리는 일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즉, 국공립대 인프라 확충 및 질적 개선이라는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공립대가 ‘가격(등록금) 안정화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방 국공립대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으로 몰리던 젊은이들이 지방에 남게 돼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수도권은 대학 진학에 따른 젊은이들의 유입으로 유발되는 주거난, 교통혼잡, 환경오염 등 막대한 ‘과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지방은 인구 감소와 최소한의 젊은 인재 부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으로 몰리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해당 지역에 남아 산학연 협력을 토대로 지식벤처를 활발히 창업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은 학벌 문제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고교 졸업자에 대한 다양한 진로기회를 제공하고, 부실부패 사학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도 병행돼야 할 과제이기는 하다.

물론 국공립대 등록금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54%에 머물고 있는 공립고 비율을 80%까지 늘리면서 고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고교와 국공립대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해도 매년 약 5조원 정도면 가능하다. 각급 학교의 각종 상담교사, 특수교사들을 증원하고 국공립대 재학생 비중을 현재보다 두 배 늘리는 경우에도 8조~10조원 정도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해도 OECD 국가들 평균 수준의 공교육 재정을 지출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처럼 세금혁명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매년 세금을 제대로 걷고 써나간다면 10~20년 정도 후에는 이 나라를 훨씬 살기 좋은 나라로 바꿀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같은 정책적 상상력을 현실화할 근본적 개혁세력과 이를 뒷받침할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결국 ‘깨어 있는 우리’가 희망의 근원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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