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경제연구소
증세 복지 논쟁의 종합적 해법...저소득층과 중산층 구매 여력 높여야 진정한 성장
최근 박근혜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봉급생활자들과 서민중산층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을 사면서 조세 형평성과 증세 문제가 다시금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상반기에만 계획되었던 세금이 9조원이나 덜 걷히면서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틈을 타서 재벌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온 언론들은 이른바 ‘성장을 통한 세수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논리는 간단하다. 경제가 성장하면 개인과 기업이 돈을 더 벌기 때문에 세수 자체가 늘어나는데, 쓸데없이 경제민주화니 뭐니 해서 기업을 못살게 구니까 경기도 침체되고 세금도 안 걷힌다는 식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경제의 파이를 키워 세수를 확보하는 정공법을 버리고 이삭을 줍는 데만 집중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공언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업이 투자에 나서도록 길을 열어주고 부자들이 소비를 늘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제 민주화’로 일컬어지는 정책들이 오히려 찬물을 끼얹었다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이제라도 복지에는 증세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발이라도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8월 13일 <동아일보>, “경제성장 통한 세수 증대 ‘정공법’ 대신 ‘증세 계산서’ 국민에 떠넘기다 禍 불러”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이 잘 되어야 하니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제민주화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기업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왕이면 법인세도 깎아서 투자를 촉진시키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의 한 기사를 보자.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복지공약 이행과 저성장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수요가 크게 늘어나 재정건전성 악화가 새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해 과도하게 복지지출이 확대되지 않게 하고, 성장 동력을 확충해 자연적으로 세수가 늘어나도록 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 부담을 완화해 국가 간 조세경쟁에 대응하고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과 함께 담배세, 유류세 등에 대해서는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 2013년 1월 15일 <이데일리>, “복지 재원 비상… ‘성장’ 통한 세수확대 만이 해결책”
여기서 한국경제연구원은 재벌대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연연합회(전경련) 소속 기업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들이 어떤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를 내세울지는 너무나 자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법인세를 깎아줬을 때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기업들이 경제 성장을 주도했어야 한다. 기업들의 법인세를 깎아주고 각종 규제를 풀었던 이명박 정권 때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렸는가? 기업들은 깎아준 법인세를 투자 확대에 쓰기는커녕 현금을 쌓아두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또 이명박정부 5년 동안 평균 2.9%로 역대 최악의 저성장을 기록했고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성장률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더구나 양적 성장률뿐만 아니라 물가 앙등, 전세난, 가계부채 폭증 등 질적 측면에서도 한국경제는 크게 나빠졌다. 비단 이명박정부 때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법인세율 인하와 투자세액공제 등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의 확대, 정부의 R&D 투자 지원 등 온갖 특혜를 받아왔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투자에는 인색했다. 그리고는 ‘이걸로는 부족하니 특혜를 더 내 놓으라’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번 증세 논란에서도 재벌대기업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언론들은 ‘지금보다 법인세를 더 올리면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축소하는 대신 해외 투자를 확대하여 경제가 더 악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인용된 기사에서처럼 법인세를 깎아주려면 그만큼 세금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다른 수입으로 메우거나, 지출을 줄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기사에서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과 함께 담배세, 유류세 등에 대해서는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간접세다. 소득세는 누진 과세, 곧 소득이 많으면 세율이 높아지지만 부가가치세는 같은 물건을 부자가 사나 가난한 사람이 사나 똑같은 비율로 세금이 붙는다. 곧 소득 재분배 효과가 떨어지고 소득 역진적 효과가 커진다. 이는 담배세나 유류세도 마찬가지다. 담배세는 생필품이 아니며 ‘국민 건강’이라는 문제가 있으므로 별개로 생각해야겠지만 부가세나 유류세 인상 주장은 한마디로 ‘기업들은 세금 덜 내고 싶으니 국민 전체가 뒤집어쓰라’는 식의 논리다. 가뜩이나 OECD국가들 가운데 조세재정에 의한 불평등 감소 효과가 가장 낮은 나라에서 오히려 소득 역진성을 키우는 조치다.
조 연구위원의 주장대로 법인세는 깎되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 부가세가 올라가면 가뜩이나 소득이 정체되고 있는 가계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가 오히려 내수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법인세를 깎아 기업들이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라면, 부가가치세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렇게 주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가가치세 부담이 늘어나면 대다수 가계와 생산자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고, 내수 위축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기업들 성장만 경제성장이고, 가계와 중소 생산자의 성장은 경제성장이 아니란 말인가. 더구나 부가세 증가는 결국 대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 대기업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언론이나 재벌기업들을 대변하는 학자들은 ‘성장은 대기업이 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은연중에 깔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경제가 저성장에 빠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재벌독식경제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재벌대기업들에 각종 자원을 몰아주고, 순환출자와 같은 기형적인 지배구조 및 각종 독과점과 담합을 묵인한 결과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해서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들어 한국이 구조적 저성장기에 접어든 주요 원인이 됐다. 따라서 지금 한국경제가 성장을 하려고 해도 이 같은 대기업 독식구조를 해소하는 게 중요한데, 이들 언론들은 오히려 가뜩이나 낮은 법인세를 더욱 낮춰주는 등 더 많은 혜택을 대기업에 줘야 한국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중소기업과 일반가계의 소득 여력을 키워야 훨씬 더 경제성장의 효과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근로소득자의 주머니만을 터는 증세 대신, 기업과 고소득층도 이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 걸맞은 세금 부담을 가계와 나눠서 져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구매 여력은 높여주는 것이 진정한 성장과 내수 경제 활성화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