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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13) 새만금

2013-08-05

ㆍ새만금 생명들의 아픔, 정치권이 풀어라

여느 한적한 농촌 마을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는 ‘이렇게 집 구하기가 어려워서는 차라리 아파트라도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심심찮게 이어진다. 지리산 인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실험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성공적인 사회적 농업 실험이 진행되는 곳이 바로 산내면 실상사다. 통일신라 시대, 일본의 힘을 억누르기 위하여 이곳에 사찰을 세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가 망하자 조선의 건립을 인정하지 못한 승려들의 일부는 금강산으로 들어갔고, 또 다른 일부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들이 지금 ‘땡초’의 어원이 된 당취이다. 킬러들도 섞여 있는 비밀 조직이었다고 한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같은 스님들의 정신적 기원도 당취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실상사가 한국 생태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 인드라망이라고 하는 농업 네트워크 실험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절이 가지고 있던 땅을 인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이곳에서 유기농업이 시작됐고, 그게 커지고 커져서 인드라망생협과 불교생협의 뿌리가 되었다.

■ ‘생명평화 삼보일배’를 기억하는가

생명평화라는, 좀 고루해보이기도 하는 사회 밑바닥의 흐름이 19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지리산 북서면, 전라북도의 어느 한 끄트머리에서 시작되었다. 결정적인 전기는 1998년 조계종 사태 때 실상사에서 생명평화 실험을 하던 도법 스님이 사태 해결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쿠데타 진압군의 진압대장 역할을 한 것인데, 불교 내 변방에 있던 생태주의 불교계열이 단번에 주류 세력이 되는 순간이었다. 도법, 수경 같은 산내면에서 농사짓기와 마을 가꾸기를 하며 도 닦던 선승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조계종의 중요한 축이 됐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는 생태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호빗들의 마을 샤이어가 나온다. 산내면과 실상사를 보면, 정말로 샤이어가 연상된다. 원래는 암자에서 면벽하던 선승이었던 수경을 세속으로 불러내온 것은 지리산댐 사건 때, 그의 친구였던 도법이었다. “지리산의 생명들이 다 죽는데, 너 혼자 득도하면 뭐하겠느냐?”

수경이 누구인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 얼굴은 아마 우리 모두 알 것이다. 촛불집회가 한참일 때, 조계종 스님들이 승복을 펄럭이며 법회를 개최한 날이 있다. 그날 사회를 보면서 법회를 이끌었던 그 스님이 바로 수경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은 유마경에서 나온 말을 변형한 것이다. 수경이 삼보일배를 떠날 때 간단한 법문 하나를 풀어놓았는데 거기에서 유마힐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몇 년, 이제 우리는 유마힐이 했던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그렇다. 남원에서 시작해 전주를 축으로, 전라북도 곳곳으로 퍼져나가던 전북 생명평화의 힘과 토호로 상징되는 토건세력들이 결국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 바로 새만금 삼보일배다. 기독교를 포함한 전북의 종교인들이 “이렇게 생명이 죽어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오체투지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작된 것이 삼보일배다. 전북의 토건과 전북의 생명평화가 기본적인 새만금 사건의 사회화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둘 중 하나의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샤이어의 호빗, 프로도 배긴스와 샘와이즈 갠지가 반지원정대를 떠났듯 실상사의 수경 등이 새만금 원정대를 떠난 것 아닌가? 영화에서는 모르도르의 용암에 절대반지가 떨어지고, 절대악 사우론이 멸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만금이 뉴타운이 되었고, 다시 4대강이 되었다. 그리고 새만금에서 생명평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패배했고,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위에 올라서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 장대하다, 대단하다.” 그렇게 가슴뭉클한 생각이 드는 사람,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이다. 그리고 갯벌의 죽음에 가슴 아프고, 힘이면 다 된다는 인간의 탐욕에 가슴이 아픈 사람. 결국 모든 한국인은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어느 편이든 이건 감성의 문제이고, 또한 미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꼬불꼬불하고 굽이쳐서 어쩐지 정돈되지 않은 원래 자연의 모습이 편안한 사람과 그걸 어떻게든 직선으로 펴놓아야 편안한 사람. 그렇게 두 개의 미학이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맹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이 어느 편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실 기회를 가지시기 바란다.

민물식물들이 웃자라 황폐해 보이는 갯벌 뒤로 물을 막고 있는 새만금방조제에 연결된 가력배수갑문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새만금 개발, 서두를 필요 못 느끼는 박근혜 정부

경제라는 눈으로 본다면, 전주에는 두 가지 경제 유전자가 충돌한다. 새만금으로 상징되는 메갈로마니아 혹은 거대 남근 숭상주의가 하나의 힘이다. “내 거가 제일 커.” 그게 박정희 시대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뿌리 깊은 유전자가 아닌가 싶다. 양반들의 집 크기는 물론 반찬 개수까지 상한선을 정해놓았던 조선의 역사는 그런 남근 숭상주의와는 거리가 좀 멀다. 그게 중화사상에 눌린 유교적 전통인지, 아니면 좀 더 적절한 규모를 찾으려는 생태적 지혜인지, 그 기원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태인류학의 길을 연 라파포의 ‘조상에게 바치는 돼지’라는 기념비적인 테제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가 만든 조선의 문화는 생태적 조절이라는 메커니즘을 어떻게든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신 이후 우리는 ‘세계 최대’, 그게 안되면 ‘동양 최대’라고 해야 뭔가 하는 듯싶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합류로 생겨나는 서해안 최대의 기수역을 가로 막은 팔루스를 보고 느끼는 감동에는 박정희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인들의 남근주의와 여기에 기가 막히게 결합된 대형 건설사의 생존 방식이 숨어 있다. 도지사가 연달아 삭발하던 전주에서는 ‘내 거가 제일 커’라고 말하지 않으면 ‘도민의 자존심’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남근숭상이 흐른다.

또 다른 경제 유전자는 좀 더 여성적이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방문했던 곳이 바로 전주였는데,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게 생활협동조합 실험이 한참 진행되던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협의 메카와 같은 곳은 원주이다. 그러나 생협이 대도시에서 어떻게 시민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단초를 우리에게 제공한 곳은 전주였다. 초창기 친환경급식이 처음으로 자리 잡은 곳은 제주도의 아라중학교였다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로컬 푸드를 비롯해서 실제 응용 가능한 모델을 대규모로 만들어볼 수 있는 곳은 전주였다. ‘슬로 시티’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런 다른 방식의 도시 모델이 가능한 곳도 이곳이다. 전주는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생명평화를 한국에서 끌고 나가는 지역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는 곳이다.

두 개의 힘 중 어느 쪽이 강렬할 것인가? 민주당이 자기네 텃밭처럼 생각하는 곳이 전라북도이지만, 결국 토호들과 건설쟁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시정과 도정을 장악하고 단단히 텃세 부리는 것은 한국의 다른 지역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새누리당에 4대강이 있다면, 전북의 민주당에는 새만금이 있다, 여기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민주 토건이든 보수 토건이든, 토호 세력들 사이에 형질 차이가 있지는 않다.

지난 대선을 며칠 앞두고 국회는 새만금특별법에 대한 수정안을 긴급하게 통과시켰다. 한국에서 여야가 합의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제때 제때 바로 만드는 법안은 토건법안 정도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대선이 끝나고 이긴 쪽에서 자기들 공약체계와 철학에 맞추어 인수위에서 새로 논의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그러나 차관급이 수장이 되는 새만금개발청은 대선 전에 결정되고 법안도 통과됐다. 어차피 누가 되어도 새만금은 할 거 아니냐, 이게 법안을 주도하였던 새누리당 쪽 입장이었다. 이게 민주당의 딜레마이다. DJ도, 노무현 대통령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뭔가 좀 다른 방식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정도를 새만금 방문 때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IT 쪽에 맞춘 개발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나는 이해했다.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대통령이 되면, 그쪽에서 입장을 정해서 제도를 정비하든지 타협을 보든지, 그런 기회를 주는 게 맞을 듯싶다. 그렇지만 어쨌든 할 거 아니냐, 추진하는 쪽에서 그렇게 강행하고, 큰 선거를 앞두고 전북 민심의 이반을 염려하여 그냥 입 다물고 있던 형국이다. 어쨌든 새만금개발청 통과까지 정말로 ‘추진’ 쪽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삼성과 현대를 보면서 이 사람들이 똑똑하거나 운이 좋거나, 하여간 남다르기는 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삼성은 위기를 느끼고 부동산 자산을 특별히 늘린 게 없다는 거고, 현대는 일관제철에 투자하느라 부동산 구입할 돈이 없었다는 거고….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다고 하는 금융위기에서 소위 초일류 기업들은 어쨌든 큰 피해 없이 넘어갔다. 그 후의 용산개발을 보면서 정말 크게 느낀 게 있었다. 이미 하기로 한 건데 어떻게 안해, 공무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말로 삼성은 용산개발에서 발을 뺐다. 삼성이 발 빼는 거 보면서 뭔가 느끼지 못한 코레일이 답답하기만 했다.

인수위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면피 이상의 무언가를 새만금에서 하겠다고 특별히 결정되어 나온 것은 없다. 안 그래도 예산 없다고, 있는 거 없는 거 싹 긁어 써야 할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게다가 부동산 취득세도 줄여주고 싶은데, 이건 지방자치단체 예산 중 가장 덩치 큰 거라서 국토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죽어라고 새만금에 돈을 퍼붓거나 ‘립 서비스’ 이상의 뭔가를 해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연간 1000억원 내외, 이런저런 명목으로 중앙에서 내려가는 예산 규모 정도로, 더 할 것도 없고 덜 할 것도 없는, 그게 박근혜 정부의 새만금 입장으로 보인다. 삼성은? 벌써 발 뺐고.

■ ‘사회적 대통합’ 민주당이 주도해줬으면

그냥 이렇게 갯벌을 막아놓은 상황에서 5년 또 그냥 지나간다. 청계천이나 4대강처럼 새누리당이 무리해서라도 속도전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사실 그렇게 진행됐다. 지난 정권에서는 4대강 하느라고 새만금에 들일 돈도, 이유도 없었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원래 총리실에서 계산할 때 전주 인근 폐기물 발생을 대대적으로 줄여도 4급수 수질기준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물 빠질 공간을 전혀 주지 않고 그냥 힘으로 밀어붙였다가 시화호처럼 대규모 수질오염 문제 생기는 게 매번 청와대에서 진짜로 걱정하던 것 아니었는가?


결자해지라고 했다. 민주당이 중심이 되어서 새만금 문제에 대해 뭔가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주면 정말로 대단히 고맙겠다. 갯벌 면적의 일부를 공단으로 조성하는 데는 찬성할 수 있다. 다만 그걸 위해서 갯벌을 전부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방조제에 조금 더 해수유통 설비를 확보해서 나머지 갯벌을 살리고 갈 수 있다. 그걸 우리는 ‘해수유통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전주가 운용할 수 있는 친환경농업 관련 투자와 슬로 시티를 위한 문화 예산 등을 대타협안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는 생태근본주의자들도 양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북이 땅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발전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처럼 서로 뭉개고 있으면, 5년 또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 갯벌이 다 죽고 나면, 새만금이 되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어랍쇼, 이건 내가 싫네?” 이게 지금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증일 것이다. 최소한 새만금과 관련해서는 민주당 전북도 의원들이 해법 모색에 대한 결의만으로도 국가적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어떤 해법이라도 좋으니, 새만금개발청에 전주의 미래를 맡기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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