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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14) 태안 화력발전소

2013-08-16

ㆍ태안을 착취하는 자, 누구인가

생태운동에 몸담으면서 가장 슬펐던 사례를 안면도에서 보았다.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안면도에 설치하겠다는 결정이 나온 이후, 주민들은 찬반으로 갈라져 오랫동안 싸웠다. 10년 후 다시 그곳에 가 찬성 측은 물론이고 반대 측에 섰던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을 보았을 때, 당시 앞장 섰던 “최열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으냐”는 얘기를 주민들에게 들었을 때, 정말로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최열도 지금은 감옥에 가 있다. 환경, 생태, 이런 얘기를 하던 사람 중에서 영광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조각나면서 다시는 이전 삶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진다. 갯벌, 골프장, 발전소,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공동체가 하나씩 망가져가고, 우리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가장 즐거운 사례는 강화도에서 보았다. 한전이 남동갯벌 등 강화갯벌에 발전소를 지으려고 할 때 주민들이 결국 막아냈다. 어민들은 조그맣지만 자신이 직접 잡은 고기들을 팔 수 있는 작은 직판장을 가지게 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펜션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게 지역발전의 완벽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뭔가 지키려던 사람이 불행하지 않게 된 경우는 강화도에서만 봤다. 

■ 화력발전소 40%가 태안반도에 몰려

서산·예산·당진·태안, 이곳을 우리는 흔히 태안반도라고 부른다. 만리포라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해수욕장이 이곳을 상징한다. 백사장에서 낙조를 정면으로 볼 수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천수만에서 가로림만 인근까지 태안해안국립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이 정도면 뭔가 지켜낼 생태나 자연이 있는 관광지처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면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다. 서해안, 갯벌, 바다, 국립공원, 이런 즐거운 조합을 보면 천혜의 자연환경 혹은 생태도시 그런 말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피착취 도시 혹은 피착취 지역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화력발전 즉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40%가량이 태안반도 인근에 집중되어 있다. 원전 한 두 개 꺼져도 지금 한국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태안지역의 화력발전소들이 정지하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정지한다. 

왜 이렇게 특정지역에 화력발전이 집중되어 있을까? 두 말 할 것도 없다. 서울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원거리 송전에 의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너무 먼 데로 가지 않기 위한 입지를 선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안지역에 집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이 지역에 원전이 들어오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준다. 도쿄에서 가까운 후쿠시마에 원전을 건설한 일본 사람들은,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정의에 더 적합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자력 지지자들은 늘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고, 언제까지라도 자신들은 그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논쟁을 할 때마다, 나는 국회의원들에게 그렇게 자신 있으면 여의도에 원전을 지으라고 말했다. 여의도에도 한강이 있어 물도 있고, 입지 조건이 불가능할 것은 없다. 규모만 좀 줄이면, 국회 옆 둔치에 원전을 지을 수 있다. 그랬더니 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법은 국회의원들이 고치는 것 아닌가? 태안에 원전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서울 것들’이 보기에 태안에 있는 원전도 서울 입장에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 아닌가? 안면도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방폐장이 오랜 기간 표류와 방황을 거쳐 결국 경주로 갔다. 일본산 식품에 대해서, 과연 먹어도 괜찮은가 엄청나게 민감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주로 갔다는 방폐장은 어떤 의미일까? 아니 의미가 아니라 심경일 것이다. 

태안지역에 화력발전소가 들어가면서 뭔가 좋아진 점이 있을까? 입지로 보상받은 사람들이 일부 있을 것이다. 정말로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는 약간의 시설과 일자리가 제공됐다. 그렇지만 인근 지역 전체가 시달리게 되는 보건 문제와 환경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예전에 비하면 탈황 설비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지만, 질소산화물에 대한 탈질 설비는 여전히 미흡하다. 그리고 미세먼지 혹은 초미세먼지 등 비산분진을 뛰어넘는 신규 물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히 관리되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석탄도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서 기술개발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점점 더 열악한 석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노천광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서 다시 채굴을 시작할 것이고, 예전에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버려두었던 석탄도 다시 사용하게 될 것이다. 발전소 인근의 환경 문제는 피하기 어렵지만, 태안처럼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한다. 분산되어 좋을 것이 있고, 집중해서 좋을 것이 있는데, 화력발전소는 분산이 낫다. 원전의 경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이건 좀 답변이 곤란하다. 어차피 완벽하게 안전한 원전이라는 것은 없다면, 차라리 집중시키고 나중에 그 지역을 ‘환경 포기지역’으로 지정해서 시민들을 소개시키는 것이 낫지 않나, 환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런 조심스러운 논의도 있다. 

서울 도심 야경. | 경향신문자료사진


■ 에너지·생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울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태안반도의 화력발전소들이 발전하는 전량을 서울시민들이 쓰고 있다고 보면 대충 비슷하다. 전국 통합망으로 묶여서 누가 발전하고 누가 사용하는지, 그야말로 전력거래소에서도 잘 모를 정도로 전국 표준처럼 움직이지만, 발전량과 소비량에다 송전 거리를 생각해보면 뻔하지 않은가? 적어도 전력 그것도 화력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태안반도는 착취당하고 있다.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바로 서울시민들이다. 원래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북촌의 취사용 숯을 위해서 서울은 물론 경기도의 숲까지 다 베어졌다. 19세기 북촌의 기와집 유행에 정선의 나무들까지 베어 바치던 나라였다. 정선아리랑이 서울의 기와집 대들보용 나무를 베어서 뗏목으로 보내던 인부들을 통해 퍼져나갔다는 거 아닌가. 

서울은 에너지와 자원, 생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국이 생태적으로 착취당하는 그 구조를 그대로 두고 우리는 조국 현대화라는 걸 맞이했다. 강원도는 서울에 홍수조절용 댐을 갖다 바쳤고, 경기도는 쓰레기 매립장을 갖다 바쳤다. 그리고 남해안에서 동해안을 잇는, 서울에서 가장 먼 지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바쳤고, 태안반도는 화력발전소를 갖다 바쳤다. 이 시스템이 2013년, 이제 우리 스스로도 약간씩 자긍심을 가지고 ‘선진국’이라는 느낌을 갖는 지금,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나는 태안반도에서 그 질문을 다시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생태적인 의미의 착취, 그것이 정당한 것이고 정의로운 일인가? 물론 이 질문을 우리가 진지하게 해볼 정도로 약간의 생태적 감수성이나 생태계적 논리만 가지고 있었어도 특정 지역에서 화력발전의 40%가량을 담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자. 이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일인가?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누군가는 착취하는 것이 장기적인 효율성을 담보해주는가? 미국은 노예제를 청산하고 나서야 비로소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지난 세기, 우리는 원전을 잔뜩 지어놓고, 밤에 원자력이 남아 돈다고 심야전기를 할인해서 쓰게 해주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심야전기가 부족해서 다시 원전을 더 지어야 하는, 정말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전하기 위해서 발전을 해야 하는 기상천외의 일이 벌어진 곳도 한국이다. 다른 발전소들을 자회사로 떼어내고 송전만 한전에 남은 상황에서, 한전은 실적을 올려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죽어라 송전 시설을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원전에서 발전된 전기를 서울로 보내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도,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한전 간부들의 연봉을 올리기 위한 수단 이상은 아닐 수도 있다. 어지간한 전기는 태안의 화력발전소들이 다 서울로 보낼 수 있는데, 부산에서 무슨 전기를 서울로 보낼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송전업자들에게 발전 시스템은 물론 국가에너지체계까지 다 휘둘리는 이 상황이 효율적인가? 

반면, 이 모든 사태의 원착취자에 해당하는 서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상징적으로 서울에 딱 하나 남아있는 당인리 화력발전소도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철수한다. 덩더쿵 덩더쿵! 쓰기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는 도시. 적어도 생태적인 의미에서 서울처럼 기형적이며 기생적인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댐으로, 발전소로, 영문도 모르고 희생당하는 도시들이 생겨나는 것 아닌가? 그게 지역발전이고 지역개발이라고 지금까지 포장됐다. 온갖 미사여구는 물론, 현실성과는 담 쌓은 숫자들이 경제성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쓰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 구절처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그런 식이라면 발전하지 않는 도시, 쓰지도 말라,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석유, 석탄도 언젠가는 고갈되고, 원전주의자들이 그렇게 청정한 미래에너지라고 하는 우라늄도 결국은 고갈된다. 지금처럼 개도국들의 원전 건설이 늘어나면 우라늄의 고갈 속도는 더 빨라진다. 플루토늄도 마찬가지이다. 지속가능한 도시 혹은 생태도시에 대한 고민은 기본적으로는 환경정의에 대한 고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스템의 효율성과 생존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 권역별 분산형 전력체계가 필요한 까닭

일본은 전기회사를 분사하면서 지역별로 나누어놓았다. 그래서 동경발전은 후쿠시마에 원전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반면 원폭 피해지역인 히로시마현을 관장하는 중국발전은 일본 전기회사 중 원전 비중이 가장 낮다. 우리는 분사를 하면서 회사의 수익성을 다 똑같이 맞추어 놓았다. 그래서 회사들이 가장 경제성이 좋았던 태안 지역의 화력발전소를 하나씩 가지게 된 것이고, 제주도의 시설들도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말만 동부, 서부, 그렇게 지역으로 되어있지, 사실 그런 지역성은 이름에만 있는 게 우리나라 시스템이다. 만약 일본처럼 서울발전이 서울지역의 발전을 담당하거나 혹은 지금보다는 비싼 가격에 사오게 되었다면, 딱 하나 남은 당인리 화력발전소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겠는가? 

기존의 송전 계통을 그냥 두더라도 부분적으로 분산형 전원체계를 도입할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들은 자체 발전을 하게 하고, LNG 발전소도 지역별로 더 늘릴 수 있다. 분당에도 LNG 발전소가 있다. 그런 식으로 권역별 관리를 시작하고, 분산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태안과 같은 발전소 집중 지역의 문제는 풀기가 어렵다. 결국에는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원자력 지지자들의 힘에 온 국민이 끌려가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위원회라는 게 결국 원자력 홍보기구, 딱 그거 아니었는가? 

많은 지역의 경제문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관계되어 있고, 지역토호와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지역 리더들을 배출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토착화시킬 것인가, 그런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생태적인 면에서 태안반도의 착취 문제는 태안이 자체적으로는 풀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화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주민갈등만 더 강해질 뿐이다. 이건 그들을 착취하는 서울이 바뀌어야 한다. 도시적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냥 로맨틱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느꼈다. 그러나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고통당하고 일상이 난도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만약에 서울의 25개 구청별로 에너지 자립을 해야 한다, 이렇게 결정했다고 해보자. 당장에는 난리가 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나빠지겠는가? 오히려 내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럽만큼 빠른 속도로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기술강국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1992년 의제21이 그런 거였고 기후변화협약도 그런 의미였는데, 우리나라에는 껍데기만 들어왔고 시스템의 근본에 대해서는 아직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지역별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와 토호와의 싸움의 한 축에 들어가 있는 것이 옳다. 

올 여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안면도나 만리포 등 태안반도의 이곳저곳으로 놀러갈 것이다. 기왕 간 김에 근처의 화력발전소 한 군데 정도는 둘러보시기 바란다. 많은 발전소가 그렇듯이 인적 드문 곳을 찾다보니 대부분 절경지에 들어가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통합 그리드로 연결된 전국의 모든 콘센트는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전부 연결되어 있다. 착취자냐, 피착취자냐, 착취의 도시 태안에 가시거든, 발전소 구경은 한 번씩 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가 후쿠시마의 비극을 피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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