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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선대인칼럼] 역외 조세도피와 맥쿼리를 통한 국내 조세도피

2013-06-19

[선대인 칼럼] 철저한 조세 도피자들 추적은 물론 엄중한 행정·법적 처벌 필요

최근 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로 역외(offshore) 페이퍼컴퍼니 설립 행위를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지금처럼 대중적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지금까지는 ‘조세피난처’라는 말이 일상화돼 있었습니다. 이 표현은 영어의 ‘tax haven’을 옮긴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저도 큰 문제 의식 없이 같은 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tax haven’이라는 표현도 한국의 ‘조세피난처’라는 표현도 현실을 호도하는 표현인 게 사실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역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법인이나 개인이 부당한 과세라는 재난을 피하는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그 정반대인데도 말입니다. 즉, 국가의 정당한 과세 행위에 대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세금을 줄이거나 탈세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신문 등 일부 언론이 쓰고 있는 조세회피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세 회피는 영어로 표현하면 ‘tax avoidance’에 해당하는 말로 합법적인 틀 안에서 세금을 줄이거나 안 내려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불법행위인 탈세(tax evasion)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인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역외 금융거래는 합법적인 틀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온갖 탈세 및 규제 위반 등 불법이 횡행합니다. 설사 역외 금융거래의 많은 부분이 합법의 포장을 둘렀다 해도 내용적으로는 납세라는 사회적 책무를 면탈하려는 매우 공격적인 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세회피라는 표현 또한 현실을 상대적으로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27일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 2번째 명단을 발표한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래서 저는 현재로서는 ‘조세 도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행위 주체가 적극적으로 정부의 과세를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글로벌 대기업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세율이 높은 것으로 비용을 몰고 수익은 세율이 낮거나 없는 곳에 몰아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행위)조차도 과세를 적극적으로 피하려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조세도피’라는 말이 포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tax haven’은 ‘조세도피처’로 옮기고 그 같은 행위는 ‘조세도피’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부터는 조세도피로 표현하겠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조세도피의 많은 부분은 역외 탈세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조세도피처를 통한 역외 탈세가 갈수록 횡행하고 있고 규모도 한국 GDP의 몇 배씩 될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이미 개발도상국 가운데 러시아, 중국에 이어 한국이 3위에 오른 것으로 분류될 정도로 한국의 해외 재산도피와 역외 탈세도 심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뉴스타파가 공개한 사례와 내용만으로는 역외 탈세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외 탈세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되 이들의 행위를 현재로선 역외탈세로 섣불리 규정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들 법인이나 관계자들이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항변하고, 이를 근거로 일부 언론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물타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조세도피를 실행하는 법인과 수퍼리치들은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탈불법을 포함한 모든 조세 최적화(tax optimization) 수단을 극한까지 밀어붙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분명히 불법이거나 불법에 준하는 상황이어도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력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 사법시스템을 매수해 처벌을 피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역외에 세금을 잔뜩 쌓아놓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세금을 왕창 낮춰주면 재산을 들고 들어갈게’라며 정부와 협상도 벌이는 자들입니다.

실제로 이들을 위해 처벌을 면제하고 세율을 대폭 깎아주는 조세특례조치가 미국에서 여러 차례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금을 적게 내는 만큼 일반 가계와 서민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그들을 위한 예산은 줄어든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과 축적한 자산에 대해 응당 내야할 최소한의 세금도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오죽하면 이들은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만 내는 것이다”라고 뻔뻔하게 얘기하겠습니까.

따라서 역외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 자체가 법적인 판단 이전에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들을 “합법적 틀 안에서 이뤄졌다”는 문제 당사자들의 항변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국내 민자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도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있는 맥쿼리인프라투융자(아래에서는 맥쿼리로 축약)가 대부분 합법적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 행위를 우리가 정당하게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홈페이지 캡처.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맥쿼리는 멀쩡히 수익을 내는 자회사격인 민자도로 운영사의 저금리 대출을 연리 20%짜리 고금리 대출로 바꿔버립니다. 민자도로운영자회사가 벌어들인 운영수입을 이자수입으로 쪽 빨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민자도로운영자회사를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인 빈껍데기 회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들 자회사들은 법인세 한 푼 안 냅니다. 이런 방식으로 맥쿼리는 매년 1500억원에 가까운 이자수입을 올리지만, 맥쿼리 자체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맥쿼리는 이익을 전액 배당하고 있는데, 조세특례에 따라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하면 법인세를 내지 않습니다. 물론 이익을 최종적으로 배당받는 주주들은 5% 수준의 쥐꼬리만한 세금을 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는 최고세율이 35%인 소득세율이나 14% 수준인 이자소득세와 견줘도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외국 자본투자를 유치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최소운영수입 보장 등 민자사업에 특혜성 조치를 취해주고 이에 더해 각종 조세특례를 제공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제도와 규제 및 조세 환경을 만든 이들이 맥쿼리의 감독이사 등으로 들어가 이들의 ‘무위험 고수익 무세금’ 행위를 돕고 있고 자신들의 배도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맥쿼리라는 호주회사의 간판을 빌려왔을 뿐 맥쿼리 지분의 60% 가량은 실은 국내 자본입니다. 사실 맥쿼리가 하는 수법으로 국내의 수퍼리치들이나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역내 조세도피’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꾸로 역외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이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맥쿼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들은 ‘조세 최적화’니 ‘사업비용 절감’ 이니 ‘사업 효율화’ ‘경영상의 필요’ 등등 온갖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국가의 정당한 과세나 규제를 피해나가려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조세도피와 역외탈세 시도는 일회성으로 벌어지는 단순한 일탈행위가 아닙니다.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는 현대 국제금융이 발달해온 방향이며 본질입니다. 또한 이 같은 역외금융과 조세도피처가 있고, 각국의 대기업과 수퍼리치들이 이들 지역을 통해 조세 회피 내지는 탈세를 하는 바람에 각국이 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고,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와 제도마저 해체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따라서 쉽지는 않지만 관련 전문가 충원과 철저한 추적, 제도 정비, 국제 공조 강화 등을 통해 지금이라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물론 문제의 성격상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사태를 바로잡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경제위기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과 IMF, OECD 같은 국제기구들이 과거와는 달리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 자세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정부도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재벌가를 중심으로 이들 조세 도피자들을 철저히 추적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엄중한 행정적 제재와 법적 처벌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조세 형평성을 확보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해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가 좀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와 경제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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