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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 (1) 광장시장에서 길을 묻다
“어디로 가는가, 한국 자본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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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를 시작하며

2013년 봄,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였지만, 우리의 미래, 아니 경제적 미래가 어떻게 갈지 아직은 안개에 싸여 있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희망하였던 48%는 멘붕 혹은 절망을 호소한다. 대선에서 승리한 측도 경제의 미래에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대선에서 이기면 ‘2013년 체제’가 올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실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온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우석훈, 선대인 두 경제학자가 직접 경제의 현장을 방문하여 그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조짐들을 관찰하고, 과연 한국 자본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과연 한국 경제에 변화가 생기는 것인가, 생긴다면 그 변화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흐름들이 희망적인가, 더욱 절망적인 것인가? 박근혜 경제가 막 출발한 지금, 그들의 현장을 찾아 떠난다.
드디어 봄이 되었다. 지난 겨울,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겨울이었을 것 같다. 내 삶에서 이보다 고통스러운 겨울이 있었을까?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삭발을 하고 강릉에서 속초까지의 길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걸은 적이 있다. 전두환 시절의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소위 운동권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참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어렸다. 나는 스펀지처럼 고통이든 기쁨이든, 뭐든지 받아내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지고 난 후, 그 겨울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대선 당일, 선거 결과가 어느 정도 명확해지고 난 후 첫 전화는 조국 교수에게 했다. 그리고 다음 전화는 방송인 김미화씨와 선대인 소장에게 했다. 이후 김어준 등에게 몇 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그러고 나서 맨 처음으로 결정한 것이 히로시마행을 취소한 것이었다. 선거에 이기든 지든, 몇 달간 히로시마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합리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왠지 이 땅에서 ‘꼬질꼬질하게’ 사람들과 고통스러운 5년을 보내야 될 것 같았다.
■ 한국 자본주의가 출발한 곳
‘일상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라는 표현인데, 20대의 나에게는 이 말이 참 살갑게 와닿았다. 그러나 나도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이제 그 일상성 안에서,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또 하나의 결정을 했다. 꽃피는 봄이 되기까지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 선거에 졌기 때문에, 혹은 몰린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결정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겨울, 툭하면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내려갈 정도로, 참으로 길고도 참혹하게 추웠다.
그리고 봄이 되었다. 4월9일, 개나리도 피고 벚꽃도 피고, 간만에 부푼 마음으로 종로에 있는 광장시장으로 갔다. 대선 이후 처음으로 이곳에 온다. 늘 그렇듯이 빈대떡 한 장 먹으면서, 약간은 심각하게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해볼 생각이었다. 뭐야! 종로쪽 출입구에서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익숙한 광장시장 간판을 보는 순간, 눈이 내린다. 눈? 4월에 눈? 진눈깨비 같아 보이는 눈은 순식간에 함박눈으로 바뀌어 잠시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어, 진짜 일 안 풀리려니, 가지가지 하네, 싶었다.
앞으로 경향신문에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과 함께 토요일마다 연재를 한다. 마침 나는,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프랑스의 로베르 부아이에가 ‘조절 국면의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조절학파(regulationist)’가 세계 경제를 설명하는 주요한 틀로 사용된 적이 있다. ‘국독자’라고 하는 운동권 경제 용어, 즉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말이 이 조절학파와 관련되어 있다.
국가가 자본의 흐름을 궁극적으로 조절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용어는 드골이 했던 프랑스식 계획경제를 설명하는 데 무척이나 유용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바로 이 용어가, 국가가 자본을 좌지우지하던 박정희의 유신경제와 전두환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데 꽤 적합해 보였고, 한국에서도 상당히 유행을 했다. 아, 옛날이여! 조절학파 같은 얘기를 대중 강연 때 했다가는 사람들 떼로 재우기 딱 좋고, “쟤 대체 뭐라는 거야?”, 이런 힐난을 학생들에게 바로 듣게 된다. 10년도 넘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한때 나를 배낭에 <자본론> 한 권 챙겨넣고 무작정 파리로 떠나게 만들었던 그 단어가 잊혀지겠는가? 몇 주 전 내 머리를 스치듯이 치고 간 단어가 ‘조정 국면의 한국 자본주의’라는 용어였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지금부터 조정 국면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 문제는 그게 어떤 형태인지 혹은 어떤 방향인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통령, 우리들의 대통령 박근혜는 그걸 알까? 그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도 잘 모르는 것을 도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조정’이라는 용어를 생각하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곳이 바로 광장시장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응당, 그래 광장시장이지, 그럴 곳이다. 그리고 20대 청춘들 중 광장시장을 안다면, 상당히 희귀종일 것이다.
내 주변의 20대들에게 광장시장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단 모르는 것이 기본이고, 혹시 아는 사람들은, 자신은 알지만 자기 주변 또래들은 잘 모를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수제옷이나 수제구두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건 광장시장에 가야지”라고 단순하게 대답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광장시장의 ‘광장’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여의도 광장, 시청 광장, 그런 광장이라고 상상하는 듯싶다. 기묘한 중의법이다. 대학생들의 인민노련 이해도에 대한 샘플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노회찬이 대표였던 인민노련은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약칭이다. 인민의 ‘인’은 인천에서 온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청년들은 민중보다 센 ‘인민’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역시 절묘한 중의적 의미다. 광장시장에는 광장이 없다. 물론 지금은 시장 한가운데에 ‘만남의 광장’이라는 고속도로식 이름이 붙어 있지만, 잠시만 정신을 놓치면 원래의 길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의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다. 광장시장에는 광장이 없고, 단어의 의미도 그런 게 아니다. 청계천 위의 다리 이름, 광교와 장교에서 따온 말이다. 광교에서 장교까지, 혹은 광활하고 장대하다, 그런 한자 의미로서의 중의법, 2013년에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광장’이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그래도 사람들 마음속에 뭔가 울림이 있다면 고마울 뿐이지! 광장시장은 이제 현대식 대형마트에 밀려 어떻게 살아남을까, 소위 한국 자본주의에서 지원의 대상이 된 재래시장일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인, 오래된 역사의 유산처럼만 보인다.
■ 광장시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4월의 눈을 뒤로, 다시 광장시장 안으로 들어와 익숙하게 빈대떡을 한 장 시킨다. 지난 1년, 참으로 머릿속에 많은 것을 그려보았던 시장의 모습이다. 이 광장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킬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작년 한 해 동안 동료들과 함께 기획했고, 그 배경이 바로 이곳이었다. 강남 킬러와 강북 킬러 사이의 비정한 갈등을 통해 한국의 상권이 도심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기획은 아직도 표류 중이다.
그게 못내 아쉬워 작년에 출간한 소설책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잠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경제관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장소로 활용한 곳도 바로 이곳의 빈대떡집이었다. 왠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할 때, 그 장소가 강남 테헤란로거나 청담동 혹은 여의도 63빌딩 옆이라면 어색해 보인다. 그곳에는 아직 역사성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딘지 느끼해 보인다.
광장시장은, 역설적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출발한 바로 그곳이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조선제국이 망하던 시기, 고종황제가 정부의 돈을 풀어서 처음으로 매일 열리는 시장, 즉 상설시장을 만든 곳이 바로 광장시장이다. 1905년, 이미 남대문까지 일본 상권이 밀고 들어왔고, 마지막 남은 조선의 상권인 종로라도 지키고자 만든 ‘관제 시장’이 바로 이곳이다. 1910년, 나라는 일본으로 넘어갔지만, 종로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이곳은 명동의 ‘혼마치’에 맞서 끝까지 버텼다. 물론 그 민족적 자긍심의 끝은 쓰다.
이승만이 독재를 지키기 위해 동원한 정치깡패인 이정재,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이정재가 활동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의 삶이 무르익은 곳도 이곳이다. 아, 지난 대선, 한국을 방문한 팀 버튼 감독이 빈대떡을 먹고 가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곳도 역시 광장시장이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한국 경제를 소개하면서, 여기에서 섬유산업으로 상징되는 한국 경공업의 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광장시장 한가운데 앉아서, 이 땅의 경제학자로서, 자긍심과 평온함을 가지고 이 미로의 번잡함을 즐기지 못했다. 솔직히 4월에 갑자기 내린 함박눈을 보면서 들어온 광장시장에서 참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다.
■ 나에겐 관념이었던 곳이 박근혜에겐 실체였다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는 이런 재래시장에 오면 먼저 상인들의 손부터 잡고, 듣거나 말거나, 하여간 “고생하십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너무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먼저 굳어지고, 사람들의 손을 먼저 잡는 일을 잘 못했다. 그리고 너무 뻔한 얘기들마저도 잘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에서 시장 음식 잠깐 먹고 상인을 포옹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코스프레’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민중을 얘기하거나 빈민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시장에서 상인들 손을 잡고, 그냥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내는 것을 불편해했던 것은 아닌가?
어쨌든 전라도 지역을 제외한다면, 한국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종로의 광장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의 상인들에게서,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그걸 세대의 눈으로 보면 50대 투표율로 나오고, 소득으로 보면 저소득층 득표율 같은 것으로 나올 것이다. 두 개의 흐름을 합치면,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광장시장으로 대표되는 서민경제 그리고 재래시장에서 믿음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한 진보의 온라인 정치운동이 재래시장의 상인 등 촘촘하게 배치된 새누리당의 오프라인 조직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여간,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광장시장에서, 우리는 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더 내 ‘빈정’을 상하게 만든 것은, 다음 대선에서도 한국에서 광장시장으로 대변되는 지역상권의 보수적 상인들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골목상권, 지역상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광장시장 한가운데에서 내가 아무리 뭘 사먹더라도 결국 이 사람들은 ‘반공’에 투표할 것이고,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장 경제’에 투표할 것이 분명한 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방안은, 최소한 나에게는 없다. 그걸 인정하려 하니, 솔직히 더더욱 빈정이 상했다. 광장시장 한복판에서 듣기 싫어도 귀에 들리는, DJ와 노무현 그리고 이정희에 대한 걸걸한 막걸리향 할아버지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솔직히 고통스러웠다. 경제민주화. 광장시장의 상인들에게 그것은 전적으로 박근혜의 것이었다.
그래도 남는 게 식욕이라!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빈대떡 한 장을 더 시켜 먹고, 넉살좋게 농담을 해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경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내 모습의 초라함이란! 녹두의 고소한 뒷맛이 없었다면, 너무 고통스럽기만 한 기억으로 이 순간이 남았을 듯싶다.
“나에게 광장시장은 관념이었지만, 박근혜에게는 노다지 표밭이었다.”
아쉬움 가득 안고 광장시장을 떠나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다. 비참했다. 내가 처음 경제학 공부를 할 때는 부르주아 경제학은 관념이고, 중요한 것은 경제적 관계인 본질이라고 배웠다. 물론 내가 지금 그런 유물론적 경제학 이론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뭐가 관념이고, 뭐가 실체냐, 이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된다. 표만이 물질이냐? 현실은 그렇게 보인다. 정권 바꾼다고 세상이 뭐가 바뀌겠냐, 차라리 사람을 바꾸자는 얘기도 있다. 광장시장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주장은 관념처럼 4월에 내리는 진눈깨비처럼 떠다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