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경제연구소
ㆍ‘신의 땅’ 포항이 힘들면, 다른 곳은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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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스위스의 취리히에 갔다가 이탈리아 아저씨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1주일 넘게 단골로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이 세 가지 언어권이 하나의 국민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취리히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허름한 피자집에 모여서 밤마다 읽던 책은 그람시였다. 오, 안토니오 그람시! ‘파시즘’이라는 바로 그 단어를 만든 무솔리니가 감옥에 집어넣은 바로 그 이탈리아 공산당의 대표적 인물. 35세에 감옥에 가서 46세에 사망하였다. 이런, 내가 46살이다. 아, 나는 너무 개돼지처럼, 그냥 처먹고 사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구나! 내 나이에 죽은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우리 친구들은 한 번쯤은 책방에서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그의 구명을 위해 애썼던 절친 스라파의 책은,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람시의 후광만으로도 표지를 열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던 기억은 아직도 난다.
■ 이탈리아 공산당의 ‘내부 식민지’ 이론
이탈리아 공산당이 유행시킨 여러 테제 중에서 ‘내부 식민지’ 이론이라는 게 있다. 공업지역인 밀라노 등 북부 이탈리아와 농업 지역인 남부 이탈리아 사이의 갈등에 관한 얘기이다. 쉽게 말하면, 한 국가 내에서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을 내부 식민지처럼 착취한다는 얘기이다. 이 얘기를 한국에 가지고 오면 수도권, 특히 서울과 다른 지역 사이의 비대칭적 구조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은 다른 지역을 착취하고, 다른 지역은 서울에 돈과 사람을 빼앗기고….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좀 복잡한 개념을 들이대지만, 결국 서울과 다른 지역 사이에 경제적 차별이 있다는 것 아닌가? 자신이 어느 지역에 태어났는가에 따라서 경제적 운명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 어쩌면 좀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하여간 GRDP(지역내총소득)라는, 일종의 지역소득을 들이대면, 한국의 모든 도시들이 소득에 의해서 줄을 서게 된다. 서울은 중간 정도 되고, 울산이 가장 잘살고, 대구가 가장 못 산다. 정말? 그렇다. 아무것도 없다고 맨날 개발사업 유치하고 케이블카 놓겠다는 강원도나, 골프장 아니면 지역 경제가 갈 길이 없다고 유일한 식수원인 지하수 위협을 감내하는 제주도보다 대구가 더 못 산다. 왜 대구가 못 사느냐, 이거야말로 연구 대상이다.
이런 몇 가지 상식들 위에 대선 이후 가장 궁금했던 지역은 바로 포항이었다. 포항, 그렇다, 박정희의 신화와 박태준의 신화가 만들어낸 신의 땅! 그뿐이랴? 이명박 정권은 포항 정권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형님대군’이라고도 불리던 이상득의 봉토였다. 경제 위기로 국회에서 예산이 쑥덕쑥덕 삭감되던 순간에도 ‘형님 예산’은 여지없이 관철되었다는 얘기들이 신문에 매일 나왔었다. 정권 후반기에는 위기를 맡기는 했어도 지난 정권의 핵심실세들의 모임인 ‘영포회’, 영일·포항 출신들이 실력 행사하던 게 지난 정권 아니었던가?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으로 상징되던 그들은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듯싶다.
■ ‘형님 예산’ ‘영포회’ … 포항의 지금이 궁금했다
2009년 8월18일, DJ 사망소식을 경주 문무대왕릉 바로 앞에서 들었고, 그의 기구했던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포항을 방문했다. 오랫동안 하던 경상도 연구의 현장 조사차 포항 롯데백화점에도 들렀다. 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우울하고 마음 안 좋던 당시 내 마음에는, 다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포항만 유독 경기가 좋고, 잘 돌아가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내가 못된 거겠지? 하여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DJ 때에는 술안주로 홍어가 유행했고, 노무현 때에는 딱히 정권과 관련해서 특히 유행한 음식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MB 정권 때에는 과메기 특구까지 만든다고 하면서 과메기가 유행했다.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 후에는 포항을 방문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이후, 과연 지금 한국 자본주의는 어떨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포항, 그것도 포항 롯데백화점이었다. 내가 아는 경제적 상식으로는 인구 70만~80만 정도가 되어야 백화점 하나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는데, 인구 50만 미만 시절인 2000년 포항에 롯데백화점이 진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게 포항의 경제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싶었다. 그들은 과연 어떨까. 그래서 결국 포항으로 달려갔다.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지역경제에 크고 작은 특혜를 주고, 고향 출신들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영광을 보고, 게다가 대선에서 또 이겼으니! 그 정도면 지금 ‘덩더쿵 덩더쿵’ 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싶었다.
오, 마이 갓! 고용은 공무원처럼 안전하고, 월급은 다국적기업 수준으로 높은 포스코를 옆에 놓고, 한편으로는 정권을 두 번씩이나 창출한 그 심장부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포스코가 재채기하면 포항 전체는 감기로 시달립니다.” 롯데 백화점은 2년째 매출이 마이너스로 급감추세이고, 여기에 포스코의 구조조정까지 겹쳐 엄청나게 힘들다는 답변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지금 포항 경기 말도 아니라는 얘기들을 했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두 번 연속으로 정권을 뺏긴 전라도 지역이 지금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PK는 다르다면서 TK와는 다른 정서를 보여주기 시작한 부산도 지금 경제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그런데 지금 포항도 힘들다고? 그렇다면 지난 정권에서 도대체 어떤 도시가, 어떤 지역이 수혜를 받았다는 거야?
공교롭게도 내가 포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원이 박근혜에게 투표한 듯싶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대학생들이나 20대들과 따로 만남을 갖지는 못했다.
“그럼 언제 좋아질 거라고 보시나요?”
“아무래도 박근혜가 되었으니, 하반기부터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어떻게요?”
위기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구구절절이 나한테 얘기하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메커니즘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박근혜 정부가 하여간 뭔가 잘해서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싶었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애잔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경상도나 전라도, 이런 지역적 편견은 정말로 전혀 없고,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그 지역경제의 문제를 풀어야 결국 한국 경제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포항에 있는 롯데백화점의 밖, 한산하다
■ “시민은 포스코를 사랑합니다”… 그럼 포스코는?
마침 올해는 포스코 창립 45주년이다. 45? 이런 어정쩡한 숫자를 기념하는 경우도 있나 싶었다. 포항시 길가는 곳마다 “포항 시민은 포스코를 사랑합니다”라는, 정말 닭살 돋는 구호들이 놓여 있었다. 진짜 마음 아프지 않은가? 세계 경제의 위축으로 기초소재를 제공하는 포스코는 작년 말부터 한참 구조조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젠 공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임지는 누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로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포스코에서 포항을 얼마나 사랑할까? 그들은 핵발전 같은 좀 뜬금없어 보이는 사업에 더 들어가고 싶어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들의 장기계획에 이미 노후설비화된 포항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가 포함되어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는 않다. 이 가슴 아픈 짝사랑이여!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셰 등 이름만 대도 벌벌 떨 만한 회사들의 본사가 있는 곳이 독일 슈투트가르트이다. 이곳이 생태도시의 대표 사례인데, 워낙 지내기가 편하니까 다국적기업의 본사들이 알아서 들어간 곳이다. 기업과 지역의 상생이 진행된 대표적 지역이다. 포항의 현실은 그것과는 좀 거리가 멀다. 진짜 일방적인 짝사랑인데, 정치적 힘이 경제적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가 포항이 아닌가 싶다.
가장 최근의 통계로만 보면 포항시의 1인당 GRDP는 2009년에 2만3000달러, 2010년에 2만9000달러였다. 대규모 공단이 있는 구미시는 2009년 기준으로 5만3000달러였는데, 여기는 워낙 공단 밀접지역이라서 경우가 다르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울진군은 3만달러, 여기도 경우가 좀 다르다. 같은 경상북도라도 상주시는 1만3000달러가 안되고 의성군, 청송군 역시 그 수준이다. 이 정도면 포항시는 자족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자생적 경제가 만들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별로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가장 최근의 지역 산업연관표에 의한 효과분석이 2005년 것이다(나도 더 최근 자료를 찾고 싶지만, 5년에 한 번씩밖에 만들어지지 않는 산업연관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너무 옛날 자료만 있다는 것 아닌가). 포항에서 수도권으로 5조원 약간 넘는 돈이 오고, 거꾸로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가는 돈은 2조원 약간 넘는다. 들어오는 돈의 2배 이상이 수도권으로 나간다는 말이다. 이 숫자만 보면 수도권이 포항을 착취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다는 아니다. 포항은 전국 대부분의 지역과의 관계에서 들어가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그야말로 돈이 커졌다 나가기만 하는 그런 특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포항 남쪽 지역, 즉 부산과 경남을 포함한 동남권으로는 3조6000억원이 들어오고, 7조9000억원이 나간다. 공업 지역, 특히 국가공단 지역이 대체적으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지역과의 이러한 출입 불균형은 수출로 상쇄된다. 그런데 그 수출을 담당하는 공단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생적이지만 자족적이지는 않은 도시, 즉 수출의존형 도시의 한계 아닌가?
포항시의 염원과 달리 포스코가 포항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조정 국면의 세계경제가 증권사들의 희망찬 바람과는 달리 갑자기 하반기부터 살아나기는 어렵다. 갑자기 포항지역 철강 수출이 늘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참 마음이 답답하다. 전라도나 강원도 등 대부분의 지역은 포스코 같은 거대기업을 유치해서 그걸로 먹고 살아보자, 이런 게 지난 10년 동안 변치 않는 한국에서의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이었다. 어차피 그런 제조업은 오기 힘드니까 외국 기업이라도 유치해 보자고 하던 게 인천의 경제자유구역 아니었는가? 세계적인 대기업도 가지고 있지, 정권도 벌써 두 번째 차지했지, 그런 다른 지역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춘 포항이 어렵다면, 도대체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구조로 본다면 포항도 당분간 답 없다. 그런데 포항도 답이 없다면, 다른 지역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화점 안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 아웃도어 열풍인데도 백화점 등 매장은 한산
올봄, 전국에 아웃도어 열풍이 불고 있다. 백화점이든 아웃렛이든 구매를 선도하는 것은 단연 아웃도어다. 포항 롯데 백화점에서는 요즘 아웃도어 매장도 한산하다는 말을 건네 들으면서 진짜 마음 답답해졌다. 정권을 전유화했던 영포회, 뭐 이런 얘기 들으면 얄밉기도 했지만, 국민 경제라는 틀로 볼 때 포항 경제의 위기 호소가 남의 일 같지는 않았다. 자, 많은 포항 시민들의 바람처럼 하반기가 오고, 박근혜 정부가 뭔가 기가 막힌 일을 해서 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경제 바닥의 흐름이, 한국 자본주의의 조정 혹은 재구조화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일시적 경기 침체인가? 아니면 일본의 1990년대 경제 위기처럼 아주 길고긴 구조적 고통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한국식 경제 시스템의 자발적 구조개편이 지금 진행되는 중인 것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정말로 집권을 원하는 대안 세력이 되고 싶다면, 포항의 지역 경제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시각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포스코와 그 계열사들 중심으로 철강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오래된 거대 도시의 경제적 위기, 여기에 대해서 어떤 진단을 내릴 것인가? 민주당이든 혹은 그 누구든, 대안 세력이 되고 싶다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바로 그 도시, 포항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하여간 내가 만난 모든 포항사람들은 지금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박정희의 포철 신화가 만든 도시, 여기에서도 대안 모델이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