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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재벌 ‘삥땅경제’ 없어져야 ‘은퇴세대’가 산다

2013-05-07


[선대인 칼럼] 서민경제 살리려면, 재벌독식구조 없애 산업생태계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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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근본적인 틀이 변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민들이 살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고 고용불안이 극심해졌습니다. 반면 사교육비가 치솟고 부동산 투기로 부채 이자 부담이 느는 등 가계지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처럼 고용은 악화되고 지출은 늘고 수명 증가로 노후는 길어지는데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는 상황에 사람들은 직면했습니다. 유럽과 같은 사회안전망과 복지 인프라도 없고, 미국처럼 활발한 산업생태계도 없어 해고되면 바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성장의 과실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지 않고 재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준 탓이 큽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평균 가계(아래에서는 개인) 소득 증가율이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뚝 떨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하위 80% 가계의 가계수지는 외환위기 이후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뒷걸음질쳤습니다. 이는 정책 실패 등에 따른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데 주거비 증가, 무리한 부채 부담, 사교육비 급증으로 지출은 늘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이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후퇴하는, 국민 대다수의 빈곤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일자리 불안입니다. 대다수 가계의 소득은 직업을 통해서 얻게 되는데, 일자리가 불안하니 가계의 삶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부는 통상 3%대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실업율을 발표하고 있으나 사실상의 실업자나 불완전 취업자 등을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12~13%에 이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더구나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장은 다른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절반 가량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수는 두 배에 가깝습니다.

특히 자영업자의 실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봅시다.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의 자영업자(그들을 돕는 가족종사원 포함) 비율은 취업 인구의 28.8%로 OECD 평균의 약 두 배가량으로 OECD 국가들 중 4위 수준으로 높습니다. 자영업이 돈을 많이 벌게 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로선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24.8%로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크게 부족하다 보니 호구지책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는 비율이 매우 높아진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자영업이 과포화상태인데도 자영업자들이 계속 밀려들고 있습니다. 가장 주된 원인은 50대가 된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입니다. 베이비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한 2009년 이후 2012년까지 늘어난 전체 취업자의 약 57%가 50대이고, 60대까지 합치면 거의 100%에 육박합니다. 같은 기간 40대 이하 취업자 수는 오히려 줄거나 현상유지에 그쳤다. 이런 50, 60대가 취업한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 사업시설 유지관리, 청소업, 소독방제업, 알선업, 도소매업, 택시기사 및 대리운전, 택배 등 영세하고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서비스업종이 대부분입니다. 2004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늘어난 전체 취업자수가 282.2만 명인데 거의 100% 비제조 서비스 분야에서만 늘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일자리가 부족해지거나 열악해진 것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재벌독식구조와 부동산거품, 수출편향 경제, 저출산 고령화 등이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재벌독식구조가 강해지다 보니 중견,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생태계가 사라지고 골목상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일자리의 88% 가량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담당하는데 이들 일자리가 점점 위축되거나 불안한 일자리가 돼버린 것입니다. 일례로, 두부시장에 CJ나 대상과 같은 대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중소 두부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나 동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SSM 등에 밀려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재벌 계열사들의 부는 늘어났으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무너지거나 고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재벌대기업들이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을 확대한 것도 아닙니다. 외환위기 전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13%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 이후 5%대로 떨어진 뒤 조금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7%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재벌 대기업 고용이 반토막 나버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노력하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는 경제 기득권에 막대한 특혜를 몰아주고 이들이 중소하도급업체나 협력업체 및 그 종사자들의 소득을 사실상 가로채는 ‘삥땅경제’ ‘가로채기 경제’ 행태가 만연해 있습니다. 건설, IT서비스, 화물수송, 택배, 택시 등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정부 등 발주자나 원주문자가 지급하는 금액이 100이라고 한다면 현장 노동자에게는 40~50 정도밖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원도급자나 중간 하도급업자, 알선업자 등이 모두 떼먹고 실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쥐꼬리만한 돈만 내려가는 겁니다. 최근 제가 건설노동자들을 만나 확인해 보니 그들의 일당이 외환위기 전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갔다는 겁니다. 물가 상승률까지 따지면 반토막 난 겁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부동산 광풍이 불고 공공건설 물량도 몇 배나 늘었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대우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겁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진행돼온 게 이런 식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생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대기업들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겁니다. 인위적 고환율과 연간 16조원이 넘는 R&D 예산의 대부분, 대규모 공공토건사업, 불공정거래 및 담합 등에 대한 방조, 세계적으로 낮은 법인세율과 대폭적인 비과세감면 혜택 등으로 그들의 독식을 방치해온 겁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재벌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는데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계속 가난해진 것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소득 격차 심화에 따른 불평등을 지속한 결과 성장동력마저 점점 사그러들고 있습니다.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강화는 경제의 성장성과 효율성마저 떨어뜨린다는 것은 멕시코, 핀란드, 남미국가 등 세계 각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룰라의 브라질처럼 저소득층 소득을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면 경제도 튼튼해지는 사례 또한 많습니다.

결국 대다수 서민들이 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보다는 올바른 정책과 제도를 통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시내 한 가게 유리문에 17년간 장사를 해오던 자영업자가 써붙여놓은 '17년장사끝' 종이카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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