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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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중산층의 비율을 70%로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아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국제 비교를 위해 적용하는 ‘중위소득의 50~150%’라는 범주의 중산층을 늘리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런 식의 기준으로는 맹점이 생긴다. 중위소득은 국민 전체를 소득 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값을 말한다. 그런데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사회에서는 많은 국민들이 낮은 중위소득 범위에 몰려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계층간 소득격차는 심하고 소득수준은 하향 평준화해 있어서 좀처럼 건전한 경제로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앞서 기준에 따르면 수치상으로는 중산층이 두꺼운 나라가 될 수 있다. 그 경우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중산층 비율은 그 나라 경제의 문제점을 은폐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중산층을 소득 범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삶의 질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측면도 함께 봐야 한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충분한 휴식과 여가생활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민주당 손학규 대선 예비후보가 내걸었던 것처럼 ‘저녁이 있는 삶’이어야 한다. OECD 기준으로는 중산층이라고 해도 밤 늦게까지 고된 일을 해야 하고 여가를 즐길 수 없는 사람들,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기에도 빡빡해서 연극이나 음악회를 보러 간다거나 여행을 가는 데에 돈을 쓰는 것에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결국 지갑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들을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이런 활동에 지출하는 돈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2010년 8월에 현대경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6.4%로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절반에 해당하는 50.1%, 최근 5년 동안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5.5%나 됐다. 소득 기준으로 본 중산층 비율이 같은 시기 67.5%였던 것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이다.
한국은 소득 기준의 중산층이 줄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삶의 질을 기준으로 하는 중산층은 더 한층 위축돼 있다. 따라서 중산층을 두껍게 하려는 경제정책은 단순히 소득문제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부가 한쪽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줄이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이 세계 5위를 자랑한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활발하고, 부패가 적은 나라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2011년 갤럽연구소가 148개 나라를 대상으로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설문조사를 통해 측정한 결과를 보면 싱가포르는 꼴찌에 머물렀다. 참고로 한국도 9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설문조사의 항목에는 ①잘 쉬었다고 생각하는지 ②하루 종일 존중받았는지 ③많이 웃었는지 ④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배웠는지 ⑤즐겁다고 자주 느꼈는지,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 질문들에 ‘아니오’라고 답한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것이다. 단순히 돈이 전부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변화 속에서, 중산층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정책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이 다섯 가지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국민들을 많이 만드는 정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선대인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