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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성공단에 플라스틱 부품 공장을 두고 있는 SJ테크의 유창근(개성공단협의회 부회장) 대표는 요즘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북한 핵실험 이후 남북 양측 모두 ‘개성공단에 영향은 없다’고는 밝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몰라서다. 유 부회장은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지만 해외 바이어들이 개성공단 업체에 발주하는 걸 상당히 불안해 한다”며 “안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제사회나 남북 양쪽에서 어떤 조치를 내릴지 쳐다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답답하다”고 말했다.
#3 울산발전연구원은 최근 엔화 가치 하락으로 현대차의 수출이 줄면 역내 500여 개 부품업체가 어려움에 빠질 수 있으므로 울산시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차와 현대차는 수출경합도가 높아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출이 줄고, 이는 울산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원 이경우 박사는 “현대차 수출과 원ㆍ엔 환율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엔화 가치가 1% 하락할 때마다 현대차 수출도 0.96% 하락하는 비례관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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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최근 발언에도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박 당선인은 20일 한국무역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환율 안정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란 걸 너무 잘 안다. 우리 기업이 손해보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연찬회에서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금융ㆍ사회문제로 번지고 있어 위기관리 차원에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SUNDAY는 국내 대표적인 민간경제연구소, 위기관리 전문가에게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새 정부의 위기극복 방안을 물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금융산업실장, LG경제연구소 오문석 경제연구실장,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 대한상의 전수봉 조사1본부장, 이정조 리스크컨설팅 코리아 대표,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5년 새 300조 늘어난 가계부채가 뇌관
‘어려운 상황’이란 것엔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위기 인식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다. 대형 민간경제연구소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 상황을 ‘극복 가능한 위기’로 본다. 세계 금융시장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고, 실물경제도 중국을 중심으로 미미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와 함께 움직여 왔기에 큰 어려움은 넘겼다는 진단이다. 연초 시장에 돌았던 ‘2월 위기설’ ‘3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의 위기설은 적절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유병규 본부장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으로 위기의식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상당히 심각한 위기로 선제적으로 막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정조 대표는 “지방에 가보면 중소기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며 “건설·해운은 초토화됐다”고 주장했다. 배상근 본부장도 “굉장한 위기다. 우리 경제를 이끌던 수출이 글로벌 수요 급감과 엔저로 경쟁력이 떨어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대인 소장은 “좋은 일자리가 줄고 소득이 줄어드는 가계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큰 위기”라고 강조했다.
권순우 실장은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지금을 위기라 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대의 성장이 예상되는 것은 상당한 위기”라고 말했다. 대한상의가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경제상황에 대한 기업 인식’을 보면 응답 기업의 59.6%가 올해 성장률을 ‘2% 이하’로 바라봤다. 한국은행(2.8%), 정부(3.0%)의 성장률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도 21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GDP)을 기존 3.5%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위기 요인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수출 감소와 가계부채가 먼저 꼽힌다.
전수봉 본부장은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은 수출이었는데 여건이 매우 나빠졌다. 수출을 중시하지 않는 풍토까지 더해졌다”고 지적했다. 배상근 본부장도 “무엇보다 수출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수출 여건이 좋지 않다. 브라질을 비롯한 신흥시장, 유럽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상의가 지방 소재 수출기업 500개를 대상으로 ‘해외 수출시장 환경과 시사점’을 조사해 보니 76%가 “외국 기업의 거세진 공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고전 이유로는 환율 효과에 따른 가격 경쟁력 상실(42.5%), 외국 기업의 공격적 투자와 물량공세(22.9%)를 우선 꼽았다. 향후 수출 전망은 ‘정체될 것’이란 응답(67.5%)이 ‘늘어날 것’(32.5%)이란 응답을 크게 웃돌았다.
선대인 소장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고용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느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은 임기응변식이어서 가계부채 상황을 나쁘게 만들어 왔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959조4000억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7년 말 665조4000억원에서 5년간 300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정조 대표는 ‘심리’를 말한다. “경제는 심리인데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 사람들의 심리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엔저, 기업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야
엔화를 풀어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엔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엔저가 지속되면 1998, 2008년 같은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엔저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영향 정도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배상근 본부장과 유병규 본부장은 “엔저는 대ㆍ중소기업 모두에 상당히 위협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하는데 엔저로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권순우 실장과 오문석 실장은 “우리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봤다. 다만 엔저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경계했다.
선대인 소장의 평가는 보다 비판적이다. “그동안 인위적으로 낮게 평가돼 온 원화 환율이 정상화되는 측면도 있다”며 “대기업들이 환율이 좋을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지금 와서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엔저 위기 극복을 위해선 기업이 품질ㆍ마케팅 같은 비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엔저를 기업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순우 실장은 “사실 그동안 환율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며 “우리 기업이 환율에 울고 웃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된다. 생산성ㆍ품질ㆍ서비스와 같은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 핵실험에 대해선 “당장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2, 3차 실험으로 이어지면 외국인 투자 감소와 같은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공통적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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