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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선대인의 눈/ 짜고 치는 ‘회계감사’
정부가 뒤늦게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난리법석이다. 정부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하지만, 허튼소리다. 이미 숱한 전문가들이 몇 년 전부터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관련 당국은 덮고 미루기에 바빴다. 대우조선해양 사례를 살펴보면 왜 그토록 기업이 부실해질 때까지 구조조정이 지연돼 왔는지 알 수 있다. 회계법인, 채권단, 정부와 감독기관에 이르기까지 관련 당사자들의 총체적인 부실과 부패, 무능과 무책임이 얽혀 있다. 이 가운데 회계감사 문제를 짚어보자.
회계감사는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기본 장치다. 재무정보가 정확해야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채권단과 정부도 해당 기업에 추가적인 지원을 할지,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할지, 심지어 회사를 청산하는 게 옳은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보다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를 좋아 보이게 분칠하면 잘못된 판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외부회계감사를 맡아온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결과에 ‘의견 거절’과 같은 부적합 판정을 내린 적이 없다. 2014년에 국내 조선 1위 기업인 현대중공업이 3조2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만큼 조선업황이 극도로 악화됐던 때다. 그런데도 대우조선해양은 ‘나홀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안진회계법인은 ‘적정’ 의견을 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터진 올해 3월에 와서야 입장을 싹 바꿨다. 2015년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2조원을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한다고 정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대우조선해양 부실감사 의혹과 관련해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감리를 진행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2012년부터 2014년 사이 5조4000억원 규모의 분식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막대한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들과 채권단에게 돌아갈 게 뻔하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과 감사인이었던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투자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회계 사기에 따른 막대한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들과 채권단에게 돌아갈 게 뻔하다.
회계업계도 핑곗거리는 있다.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의뢰하는 기업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이상 기업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상충의 문제는 미국의 엔론 스캔들이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불거진 문제다. 국내에서도 숱한 회계부정이 일어나는 배경으로 늘 지목받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이런 행태를 방조하고 있다. 부실감사나 회계부정에 연루된 회계법인들이 지금도 버젓이 구조조정과 관련된 기업 실사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조원 규모의 회계사기 문제가 터졌음에도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의 검은 공생관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2조원대 분식회계를 한 STX조선해양을 부실감사했다는 혐의로 제재를 받은 삼정회계법인이 최근 삼성중공업의 실사를 맡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지난해 9월 대우건설을 부실감사한 책임으로 1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납부한 삼일회계법인은 현재 현대중공업 실사를 맡고 있다. 중대한 회계부정을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뿐 영업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의 행태가 되풀이되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그리고 전자, 건설, 철강 등 향후 숱하게 진행해야 할 구조조정 과정에서 같은 문제들이 재발될 것이고, 국민들의 돈은 또다시 헛되이 녹아날 것이다.
<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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